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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허재는 많았지" "제1의 김민구 될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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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KCC의 허재 감독(왼쪽)이 31일 경기도 용인의 체육관에서 ‘제2의 허재’라 불리는 김민구와 함께 나란히 슛 동작을 하고 있다. [용인=임현동 기자]

“제2의 허재라고 나왔다가 그냥 없어진 선수가 부지기수다. 민구야, 나를 넘어서라.”

 “감독님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에요. 그렇지만 ‘제2의 허재’가 아닌 ‘제1의 김민구’가 되겠다는 약속 꼭 지킬게요.”

 허재(48) 프로농구 KCC 감독과 ‘제2의 허재’ 김민구(22·KCC·1m90㎝)의 시너지가 대단하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입단한 김민구는 프로 데뷔전인 26일 삼성전(12점·6도움)에 이어 30일 동부전(8점·8도움·7리바운드) 승리를 이끌며 ‘제2의 허재’라는 별명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김민구는 지난 8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6년 만에 한국 농구의 월드컵 진출을 일궈내며 ‘제2의 허재’라 불리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최하위 KCC는 올 시즌 3위(5승3패)로 꼴찌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동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을 마치고 일주일 전 김민구가 가세하면서 더 가파른 상승세다. 한솥밥을 먹은 지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31일 경기도 용인시 KCC 체육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오래된 사제지간처럼 자연스러웠다.

 - 경기가 꼬일 때 발사되는 허재 감독의 레이저 눈빛을 직접 받아보니 어떤가.

 허재 감독(이하 허): 에이~. 요즘은 레이저 잘 안 쏜다. 민구는 아들뻘인데, 혼내면 주눅든다.

 김민구(이하 김): 레이저를 아직 다 안 보여주신 것 같다(웃음). 형들이 최부영 경희대 감독님만큼 무섭다고 겁을 줬다. 근데 화나면 안 무서운 감독님은 없지 않나. 난 대학 시절부터 경기 중 벤치를 신경 안 쓰고 뛰었다. 몸이 얼어붙어 못 뛰는 것보다 낫다.”

 - 허 감독은 하승진과 전태풍 등을 전체 1순위로 뽑은 ‘드래프트 신의 손’이다. 올해 신인 전체 2순위 지명권을 얻었는데 1순위 김종규(LG)를 못 뽑아 후회하지 않나.

 허: 만약 1순위 지명권을 가졌다면 민구와 김종규를 두고 5대 5로 고민했을 거다. 지난해 경희대-고려대 경기를 봤다. 민구가 3, 4쿼터에 몰아치는 스타성이 있더라. 종료 5초를 남기고 하프라인에서 두 명을 제치고 버저비터 결승골을 넣었다. 민구는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다. 올 시즌은 지금처럼 빠른 농구를 할 수 있고, 다음 시즌 하승진이 제대하면 재미있는 높이의 농구를 할 수 있다.

 - 허재 감독이 바라본 제2의 허재는. 제2의 허재가 바라본 현역 시절 허재는.

 허: 민구는 현역 시절 나처럼 슈터도 아니고, 가드도 아니고, 포워드도 아니다. 센터 빼고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수비 리바운드를 잡아 상대 골밑까지 쭉 치고 나간다거나,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닮았다. 팀이 이기는 플레이를 펼친다. 단 집중력을 보완하고 패턴 플레이를 빨리 익혀야 한다.

 김: TG삼보 시절 봤다. 화려하기보다는 힘을 안 들이고 쉽게 하시더라. 다른 선수들이 드리블 두세 번 치고 제칠 걸 한 번 치고 제치시더라.

 - 김민구가 낫나, 연세대 가드로 활약 중인 아들 허웅(20)이 낫나.

 김: 내가 먼저 답하겠다. 대학 시절 웅이와 경기를 자주 해봤다. 피는 못 속이더라. 신체 조건, 슛, 센스는 물론 성격도 좋다.

 허: 웅이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이제 시작이고 한참 멀었다.

 - 김민구가 ‘제2의 허재’가 아닌 ‘제1의 김민구’가 되겠다고 말해 서운하지 않았나.

 허: 전혀. 오히려 당당해서 좋았다. 하지만 제2의 허재라고 나왔다가 그냥 없어진 선수가 부지기수다.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민구야 나를 꼭 넘어서라.

 김: 감독님은 ‘넘사벽’이다. 그렇지만 ‘제2의 허재’가 아닌 ‘제1의 김민구’가 되겠다는 약속 꼭 지키겠다. 생애 한 번뿐인 신인왕부터 받겠다. 감독님, 10년 안에 전설을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용인=박린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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