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히틀러」의 후계자 지목까지 받은 수석부관-「보르만」은 소련 스파이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히틀러」 치하의 「나치」독일에서 「히틀러」의 가장 신임이 두터워 수석부관으로 엄청난 권력을 구사하던 「마르틴·보르만」이 실은 2차 대전 중 소련의 스파이로 활약했다고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나치 독일에서 간첩 총수를 지낸 「라인하르트·겔렌」(대전 후 전 서독 중앙정보부장)의 회고록에서 이 사실이 밝혀져 전 세계에 크나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겔렌」장군의 회고록에 의하면 「히틀러」에 의해 그의 후계자로 지목되기까지 했던 「보르만」은 수석부관이라는 그의 직위를 이용, 각의의 의결 사항에서부터 군사 작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밀 사항을 소련에 넘겼으며 1945년 종전 후에는 소련으로 들어가 서독 문제 고문을 지내다가 지난 69년 사망했다고 밝혔다. 「보르만」은 이 같은 중요 회의의 의사록 작성·편집을 맡고 있어 최고 기밀에 접근하고 있었던 것.
종전과 더불어 행방이 묘연해 버린 「보르만」에 대해서는 그간 구구한 억측이 많았다.
46년에 열렸던 「뉘른베르크」 「나치」 전범 재판에서 「에리히·켐파」(「히틀러」의 전속 운전사)는 「보르만」이 「히틀러」가 죽은지 이틀 후에 「베를린」을 탈출하다가 「바이덴하메르」 다리에서 폭사했다고 증언했는가 하면 전 영국 정보부원 한 사람은 46년 그가 「보르만」을 사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54년 서독의 한 재판소는 「보르만」이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했지만 10년 후에는 서독 정부 당국이 2만5천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그의 체포를 시도하기도 하여 뭇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해 가기만 했었다. 이와 같은 막연한 그의 사망설과 생존설을 「겔렌」장군의 회고록이 결정적으로 풀어준 셈이다.
「겔렌」장군은 「모스크바」의 그의 부하 정보원으로부터 「보르만」이 69년 소련에서 죽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힘으로써 남미에서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던 「보르만」의 생존설을 묵살하여 버렸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다는 정평을 듣고 있는 BND(서독정보부)를 지휘했던 「겔렌」장군은 67년의 「이스라엘-아랍」전쟁을 미리 예견했고 68년 8월의 「바르샤바」군 「체코」 침공을 3주전에,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베를린」 장벽 음모를 1주일 전에 이미 탐지하였다는 사실 등으로 그의 회고록의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겔렌」의 이 주장은 「말베르트·슈피에르」 전 나치군 수상(제삼제국의 내막 저자)이 「보르만」의 당시 행동에 의문점이 많았다고 진술함으로써 더욱 뒷받침을 받게 됐는데 「슈피에르」는 2차 대전 중 각의에서 결정한 사항이 소련 당국에 거의 즉각적으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히틀러」 주변의 최고 참모진 속에 첩자가 있었음이 분명하며 그것은 바로 「보르만」이 틀림없다고 술회했다.
「겔렌」장군의 회고록은 「보르만」사건 이외에도 소련의 향후 20년에 걸친 정치·군사 목표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공산주의자들의 팽창을 저지키 위한 서방 세계의 군사적 조치를 역설하는 부분 등이 포함돼 있어 회고록의 출판을 둘러싸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독 정부도 벌써부터 이 회고록 속에 국가 기밀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으면 「겔렌」을 입건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미국과 영국의 출판사가 각기 자국 판권을 이미 계약했고, 서독의 매스컴이 재벌 「악셀·슈프링거」가 발간하는 「디·벨트」지가 25만 달러라는 거액으로 독점게재권을 획득하는 등 치열한 판권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악셀·슈프링거」계는 철저한 반 「브란트」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에 회고록의 게재가 이른바 「오스트 폴리티크」라고 불리는 「브란트」수상의 대공산 블록 화해 정책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견되어 사태는 점점 미묘한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루디게르·프라이헤어」 「브란트」 수상 대변인은 전직 공무원이 그의 재임 기간에 인지한 국가 비밀을 비록 회고록에 일지라도 폭로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법적 위반 여부를 조사중에 있다고 은근히 협박하고 있으며 소련도 타스통신을 통해 「겔렌」장군의 회고록은 「요셉·슈트라우스」 전 국방상을 비롯한 서독의 일부 「쇼비니스트」들의 날조된 음모라고 공박하고 나서 「회고록」을 둘러싼 사태의 진전여하에 따라서는 동서 양대 진영의 「데탕트」조류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몰라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흥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