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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새 가족|지상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린·얼룩말·쌍봉 낙타·「베사오릭스」·흰 사슴 1쌍 등 지난 6일 저녁 서울에 온 창경원의 새 가족들은 수륙만리의 머나먼 여행을 끝내고 제각기 정해진 집에서 피곤을 풀고 있다. 기린·얼룩말·「베사오릭스」는 식물원 뒤쪽에, 수 낙타는 코끼리 집 아래 암 낙타가 홀로 살고 있던 집에, 그리고 흰 사슴 부부는 백조 집 맞은편에 여장을 풀고 7, 8일 이틀동안 8천여명의 한국손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모두 초식동물인 이들은 잡초·나무가지·당근 등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지만 창경원의 수의관들은 가슴 죄면서 이들의 「용태」를 지키고있다.
『지금까지 모두 철야근무를 했어요. 야생동물은 몸이 아파도 절대로 남에게 눈치채지 않도록 하는게 특징이거든요. 죽는 날까지 적에게 공격의 틈을 안주는 거지요. 그래서 식사를 잘한다고 안심할 수 없어요.』
수의관 김정만씨는 이렇게 말한다.
더구나 「아프리카」에서 오던 「베사오릭스」암놈이 일본 「나고야」항에서 죽었고, 일본에서 오는 도중엔 태풍을 만나 기린암놈이 죽었을 만큼 힘들고 긴 여행이었으므로 새 가족 6식구 모두에게 태풍 때의 「롤링」으로 인한 타박상과 내출혈의 가능성이 염려되고 있다.
일본 「도꾸야마」동물원에서 2년 전 출생한 기린은 이번에 출생 때부터 자기를 돌봐오던 사육사까지 동반하고 왔는데 무릎·귀·허리 등 몇 군데에 상처를 입어 빨간 약을 많이 바르고 있다.
「기린아저씨」라는 말이 아직 어울리지 않는 앳된 도련님의 풍모를 하고 있으며 자기보다 훨씬 키가 작은 사육사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얌전하게 받아먹다가 슬쩍 머리로 사육사를 툭툭 쳐서 놀라게 하기도 한다.
3m10㎝의 늘씬한 키에 갈색바탕 흰줄의 아름다운 무늬, 술 달린 끈처럼 귀여운 꼬리, 그리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훤칠한 몸매를 하고있다.
옆집의 「베사오릭스」는 64년의 창경원 역사에서 처음 맞는 가축인데 연갈색 몸에 코·눈·무릎 등에 검은 무늬가 있고 마른 당나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두 뿔을 강단 있게 뻗치고 있다.
또 다음 집의 얼룩말은 분홍빛이 날 만큼 연한 피부에 도화사처럼 그려진 갈색 줄무늬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 나무에 기대어 예쁜 속눈썹을 내리깔고 쉬기도 하는데 등에 가지런히 돋아난 갈기가 장난감 말처럼 보인다.
「아라비아」궁전 같은 집에 사는 낙타는 요술 술병 같은 3개의 병이 뿜어내는 분수가에서 열심히 여물을 먹다가는 못난 서양사람처럼 생긴 얼굴을 들고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한다. 양처럼 작은 흰 사슴 부부는 담 밑에 집이 있어 차도의 소음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사이좋게 풀 한줄기씩을 입에 물고 마당을 산보하거나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들 새 식구는 아무도 「이름」이 없는데 창경원은 어린이들이 많이 찾아와 예쁜 이름을 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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