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이 떠난 中·高 '교환학생 유학' 꿈 대신 상처 안고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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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 J고 3년 李모군은 기구한 유학 경험을 갖고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그의 유학생활은 2001년 7월 미국 애리조나주 E고교에 교환학생으로 떠나면서 시작됐다.

"유학원 선전처럼 훌륭한 학교와 아늑한 홈스테이 가정을 그리며 도착했어요. 한데 실제는 완전히 딴판이더라고요.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돼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했지요. 당연히 선생님이나 동료 학생들과 마찰이 잦았어요."

홈스테이 가정에는 70대 미국인 할머니 혼자뿐이었다. 꿈꿨던 현지 가정체험은 접어둬야 했다. 이 할머니는 어느 날 李군이 숙제를 하러 한국인 친구집에 가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 일로 李군은 결국 퇴학을 당한다.

李군 아버지(47.사업)의 말.

"그후 아들을 현지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주겠다는 유학 알선업자의 사기에 말려 5만달러 이상을 더 날렸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한 학기를 마치고는 귀국을 시켰지요."

李군은 귀국 후 미국과 다른 한국의 새 학년 시작시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한 학년을 낮췄다. 한 살 어린 후배들과 동급생이 된 것이다.

교환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중.고생이 크게 늘면서 덩달아 나타나는 부작용 사례 중 하나다.

청소년 교환학생제란 미국이 자국 홍보와 문화교류 확대를 위해 15~18세 외국 청소년들을 미국 공립학교로 불러 교육시키는 제도.

미국 사립고에 진학할 경우 연간 2만5천달러 이상 비용이 들어가는 것과 비교할 때 7천5백달러(1년 기준) 정도의 참가비로 영어와 현지 문화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국내에는 조기유학 바람이 불던 2000년께 본격 상륙했고, 유학원 10여곳이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교환학생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최근에는 유학 대상지가 캐나다로까지 확대됐다.

그러면서 잇속만 염두에 둔 일부 어학원의 마구잡이식 알선으로 부실 사례가 적잖이 나오고 있다. 현지 적응을 못해 중도에 돌아와도 미국과 학제가 달라 편입학을 위해 몇달씩 놀거나 학년을 낮춰야 하는 문제도 따른다.

◇수요 늘면서 사기도 는다=교환학생 등으로 2년 이하의 기간 중 외국에 살다 귀국하는 중.고생은 서울에서만도 2000년 3백4명에서 지난해 4백37명으로 늘었다. <서울교육청 집계>

서울 강남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교환학생 상당수가 현지 학교로 편입하는 걸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한해 2천명 이상이 청소년 교환학생으로 가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인기가 높아지고 수요가 많아지자 이들을 등치는 현지 사기꾼들도 꼬인다.

교환학생용 비자(교류방문용.J1)를 받고 간 학생들이 현지에서 일반학생 비자(F1)로 바꾸려고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다 당하는 경우가 적잖다. 최근 LA에서는 50대 한국계 남자가 이런 식으로 한국인 10여명에게 사기 행각을 벌여 현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음이 확인됐다.

◇철저한 점검 후 떠나야="학교에 기본적으로 비영어권 학생들을 위한 영어 프로그램조차 없었고, 지역관리자가 생활관리를 해준다는 말도 실제와 달랐다. 떠나기 전 현지 정보를 철저히 파악했어야 했다." 2001년 12월부터 6개월간 미국 조지아주의 G고교를 다녀온 李모양의 말이다.

팍스교환유학재단 황현철(37)원장은 "배우려는 열의가 있고, 생활이 건전한 청소년은 교환학생 과정이 어학실력 향상은 물론 유익한 인생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라며 "이를 위해선 풍부한 정보와 경험을 가진 유학원을 통해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서울교육청 김원균(45)장학사는 "일부 유학기관의 과대 광고로 청소년 교환학생 제도를 대학 교환학생 제도와 비슷하게 생각해 무작정 기대를 거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신의 목표와 능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윤창희.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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