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정세변화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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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탁구외교」를 신호로 나타나기 시작한 미·중공접근의 움직임은 국제정치상황을 크게 동요시키고 있다. 20년을 두고 서로를 뿌리깊은 불신과 증오감을 가기고 적대관계를 지속해왔던 미국과 중공이 상호접근으로 화해를 모색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비단 양국뿐만 아니라 세계정세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우려하는 것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1933년11월에 미국은 소련을 승인했다. 소련이라는 국가가 수립된 지 17년만이다.
미국은 「소비에트」」 「이데올로기」 및 사회체제를 험악하고 불신하는 나머지 자본주의 열강으로서 마지막까지 소련승인을 망설였다. 그러한 미국이 소련을 승인하게 된 것은 당시의 세계정세로 보아 서에서는 「나치」독일이, 동에서는 군국주의 일본이 무력을 가지고 급진적인 현상타파를 대담히 서두르게 되었는데, 이 국제 「파시즘」세력의 도량을 막고 세계평화를 수호키 위해서는 침략의 위험을 느껴 현상동결에 기울이고 있던 소련과 접근, 화해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중공이 서로들 접근을 시도하게 된 것은 양국 공히 힘의 정책의 한계상황에 도달해 화해를 모색해야하고 미국은 미국 나름으로, 또 중공은 중공 나름으로 소련과 일본을 견제할 필요를 느껴 양자의 세계정책상 공통한 기반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미·중공의 화해는 주은래가 지적한대로 대만문제·월남전쟁문제·통한문제·일본군국주의 부활문제 등 극복해야할 몇 개 난관이 가로 놓여있기 때문에 많은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화해를 향한 미·중공의 접근은 반드시 국제정치상 연쇄반응을 일으켜 소련 및 일본의 외교상진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므로 「닉슨」미대통령의 중공방문이 곧 양국의 우호친선을 결과하리라고 낙관해도 좋은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미·중공접근의 조류가 적대적인 긴장을 풀면서 평화공존을 지향하고 있음은 누구도 시인을 아끼지 못할 것이다. 힘의 대결을 피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사태를 개선해보자는 암묵리의 합의가 성립된 것만 해도 획시대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대저 평화공존이란 무엇인가. 「스탈린」시대의 평화공존(1926∼37년대) 「흐루시초프」 이후의 평화공존은 각각 의미가 다르지만, 62년 「쿠바」사태이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미·소의 평화공존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첫째는 미·소가 서로들 주권·영토·독립을 존중하는 것. 그 둘째는 미·소가 2차대전의 결과로써 각각 차지하게된 세력범위를 상호존중하고 간섭을 하지 않는 것. 그 세째는 미·소가 분단 점령했던 두 개 국가-한국과 독일은 분단한 채로 현상 동결해 버리는 것. 이상 세 가지 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째번 것이다.
분단된 국가를 두개 초강대국이 현상동결을 해버렸으므로 한국이나 서독이 미국의 힘을 빌어서, 또 북괴나 동독이 소련의 힘을 빌어서 실력통일 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미·소가 남북한과 동·서독의 분단을 공히 현상 동결해 버렸으므로 이들 두개 민족은 막대한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바로 이 때문에 이 두개 지역에서 전쟁의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중공간에 평화공존이 성립된다고 하면 그 의미는 미·소간의 그것과 대동소이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경우 미·소의 평화공존이 정세를 안정시켜온 반면 미·중공의 반목대립이 정세를 긴장시켜 온 것이라면 미·중공간의 화해나 평화공존은 남북분단의 현상동결을 국제적으로 더욱 튼튼히 해줄 것이다.
현상동결의 심화는 반드시 한반도정세의 긴장완화를 의미치 않는다. 남도 북도 현상동결의 국제적 제약을 뚫고 단독히 현상타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대국이 가담치 않는 현상타파는 설령 그것이 무력충돌을 자아내게 된다하더라도 국제전쟁으로 「에스컬레이트」할 공산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남북한관계는 국제정치상 강대국의 세력권적 대립에서 벗어나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서 결정지어질 조건이 점차로 성숙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주로 미국, 혹은 일본의 군사력에 의존해서 북진통일을 할 생각을 버려야한다. 동시에 북괴 역시 소련, 혹은 중공의 군사력에 의지해서 남진통일을 할 생각을 버려야한다. 조만간에 우리는 전쟁도 평화도 우리민족이 스스로 결정해야될 단계에 접어든다. <신상초 본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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