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림과 음악 한자리서 보고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2면

오스트리아 태생의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1874~1951)는 한때 화가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러시아 태생의 표현주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와 절친했다. 함께 전시회도 열 정도였다.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음악에 대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칸딘스키가 색채와 형태의 '내적 음향'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면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쇤베르크의 영향 때문이다. 칸딘스키의 '즉흥' 연작은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 '정화(淨化)된 밤'을 듣고 영감을 받아 완성됐다.

화음(畵音)체임버 오케스트라가 LG아트센터와 함께 올해 '그림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3부작 시리즈 공연을 한다. 공연 직전 작품과 작가에 대한 해설을 한 뒤 무대 정면의 대형 스크린으로 그림을 보여주면서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이다.

'투영'(24일) '죽음과 상실'(8월 24일)'사랑'(10월 8일)이라는 세가지 테마로 공연을 한다. 오는 24일 첫 무대인 '투영'에서는 쇤베르크와 칸딘스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마르크 샤갈, 에릭 사티와 파블로 피카소의 만남 및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스트라빈스키와 샤갈, 사티와 피카소는 음악과 무대 디자인을 결합한 작품을 여러번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둔 환상의 콤비였다.

1950년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공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에서 샤갈은 몽환적이고 동화같은 무대를 만들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에 신비로움을 더했다.

피카소 역시 17년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된 사티의 첫 발레곡 '파라드'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맡아 배역들의 개성을 잘 살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23년 피카소는 사티와 다시 손잡고 '메르퀴르'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풍자적이고 광대풍인 사티의 음악을 잘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피카소는 사티뿐만 아니라 장 콕토와 스트라빈스키 등 많은 예술가와 공동 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조해내는 위업을 이루기도 했다.

이들 외에도 역사적으로 작곡가-화가의 만남은 무수히 많다. 화가 마티스는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작업에 참여했다. 쿠바 태생의 캐나다 작가 미구엘 세레이도(43)는 '레퀴엠''아리아' 등 음악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LG아트센터의 문수지씨는 "현악 합주라는 화음 체임버의 특성상 미술작품과 음악작품의 만남이 일대일 관계로 대응하는 것은 쇤베르크-칸딘스키의 경우뿐"이라며 "작곡가와 화가의 각별한 친분 관계로 출발한 만큼 일종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에피소드적 접근으로 흐를 수 있다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멀티미디어 시대에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통해 공감각에 호소하는 무대를 꾸민다는 것은 이색적이고도 반가운 기획임에 틀림 없다.

◇공연메모=스트라빈스키의 '아폴론 뮤사제트'(샤갈의 '곡예사'), 사티의 '당신을 원해'(피카소 '바이올린과 기타'),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칸딘스키'즉흥'시리즈). 소프라노 박정원 협연.2만~4만원. 3회 공연 패키지 티켓은 20% 할인. 24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02-2005-0114.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