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활한 하이닉스, 기업 재생의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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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하이닉스 반도체 채권단이 운영위원회를 열어 조기에 채권단 공동 관리를 풀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는 당초 예정을 1년6개월 앞당겨 올 상반기 중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게 됐다. 부채 11조6000억원의 부실 기업이 불과 4년 만에 순이익 1조6924억원을 내는 알짜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하이닉스 부활은 '기업 재생의 한국적 모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한때 우리 사회를 지배한 '부실 기업=해외 매각'이란 공식의 허구를 입증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진로나 제일은행 등을 헐값에 집어삼킨 외국 자본들이 불과 4~5년 만에 천문학적인 차익을 남기고 떠나는 현실과 대비된다.

2002년 5월 하이닉스도 미국 마이크론에 공짜로 매각될 뻔했다. 매각협상이 결렬되자 외신들은 "한국이 부실 덩어리를 팔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이제 수익성이나 시장점유율 등 모든 면에서 자신을 인수하려던 마이크론을 완벽하게 따돌렸다. 핵심 제조업체는 일시적 위기에 빠지더라도 우리 손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난 4년 동안 삼성전자는 플래시 메모리에 치중하고, 일본 업체들도 메모리 사업을 접으면서 반도체 가격이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나 하이닉스 부활을 이런 시장 상황의 변화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이닉스는 그동안 2만2000여 명의 직원을 1만3000여 명으로 줄이고, 비메모리 분야와 LCD.통신.컴퓨터 부문을 매각했다. 부족한 설비투자 자금은 직원들의 땀과 노력으로 그 공백을 메웠다. 기술지도 등 하이닉스 살리기에 나선 공대 교수들도 큰 힘이 됐다.

이제 울며겨자먹기로 5조원을 출자전환했던 채권 금융기관들은 원금은 물론 웃돈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채권단은 곧 일부 지분을 매각해 '하이닉스 새 주인 찾기'에 시동을 걸 움직임이다. 부활 신화를 만든 하이닉스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통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