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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한자의 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어문교육연구회 등 4개 어문연구기관에서는 각급 학교의 한자 교육 문제에 대한 그간의 조사·검토를 기초로 해서「어문교육시정촉구건의서」를 작성, 정부에 건의했다.
지난 10년간 시비를 되풀이 해온 한자교육문제는 정부가 72년부터 실시키로 예정한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재편을 앞두고 비단 국어학계 뿐만 아니라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제기되고 있다 할 것이며 이번 관계학계의 공동건의가 정부당국에 의하여 정당하게 평가되고 또 어문정책에 참고되기를 먼저 촉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건의의 내용은 지금까지 정부가 실시해 온 한글 전용문제와는 별도로 제한된 상용한자교육을 부활시킬 것, 문교부에 설치 되어있는 각종 어문조사 및 자문기관을 개편해서 한글전용 반대논자를 배제해온 편협성을 지양할 것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요는 상용한자교육 부활의 필요성과 어문정책수립의 체제 및 방법개선으로 간추릴 수가 있을 것이다.
한자교육문제에 대한 문교당국의 기왕의 방침은 「한글전용화계획」이 밝힌 대로 초·중등학교에서는 한자교육을 전폐하고 인문계고교와 대학과정을 통해서만 선택 및 전공과목으로 두겠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것이다.
이번 한글전용 반대논자들의 건의와 견주어 볼 때 대학을 제외한 각급 학교에 있어서 한자를 제한적으로나마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인가 하는 여전한 시비 속에 핵심적인 문제의 소재가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일찍부터 본 난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한글의 사용과 상용한자의 교육이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리에 서서 지식을 섭취하는데 불가결한 상용한자만은 학생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우리는 관계학계의 논쟁이나 교육과정에 대한 기술적인 견해를 넘어 올바른 언어정책의 수립을 위해서는 또한 문화적 현실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대국적인 견지에서도 한글 전용화와 한자교육의 폐지를 혼동하는 사고방식엔 찬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고교에서 영어 등 외국어 과목에 큰 비중을 두고 교육하고 있는 반면 한글만으로써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문화적 조건을 무시하고, 한자를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시정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건의는 한자교육의 구체적 과제로서 국민학교 6백자, 중학교 1천자, 고교 1천3백자의 상용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 정도의 한자라면 그것을 익힘으로써 지식과 교양을 섭취하며 또 고급학습의 능력을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며 때문에 학습 상 별 문제나 어려움이 없는데도 굳이 한자교육을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이 공감을 받기 어려운 이유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글전용 자체에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글전용을 너무도 성급하게 밀고 나가려는 나머지 과거 한자 문화권속에서 자라났고 현재도 엄연히 이 문화권의 전통적 언어수단으로 문화적 가치가 유지·생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의 단절을 가져 올 한자교육폐지를 고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글사용의 보편화라는 원리적인 명제 자체를 그르치는 소이이며 더욱 국민의 지적수준의 향상을 외면하는 국가장내의 중대사임을 깨달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이 같은 언어정책의 중대성을 직시하고 상용한자 교육에 대한 학계의 견해를 신중히 다루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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