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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취재일기

월북자 유미영, 탈북자 조명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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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유미영(92)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천도교청우당 대표 격인 중앙위원장이다. 대한민국 외무장관을 지낸 남편 최덕신(1989년 사망)을 따라 미국으로 간 뒤 1986년 4월 입북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공비토벌 사단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최덕신의 부부 동반 월북은 충격이었다.

 그런 유미영이 2000년 8월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장 자격으로 서울에 왔다. 북한은 통일전선전술 차원에서 그녀를 보내는 꼼수를 썼지만 우리 정부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별한 경호를 했고, 두고 간 아들·딸과 손주들을 만날 수 있게 배려했다.

 13년 만에 북한은 뒤바뀐 상황을 맞았다. 탈북자 출신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의 개성공단 방문 문제다. 북한은 재가동 한 달을 넘긴 공단 실태를 돌아보겠다는 우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방문 계획을 24일 승인했다. 그러나 26일엔 “조명철은 들어오면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김일성종합대를 나온 조명철은 1994년 7월 중국에 체류하다 서울로 망명했다. 부친은 정무원(내각) 건설부장을 지낸 조철준씨로 남부러울 게 없는 엘리트였다. 관계 당국이 “귀순 동기를 찾기 어렵다”며 위장 망명 가능성을 주목할 정도였다. 한국 정착 후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새누리당 비례대표 4번을 받고 국회에 진출했다.

 그런 조명철이기에 북한엔 껄끄러운 존재인 건 맞다. 지난해 8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그를 처단 대상에 올렸다. 탈북자로서 ‘한국행 드림’을 이룬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유미영의 서울 방문 전례에 비춰봐도 방북길을 막는 건 속 좁은 처사다. 월북 작가 이기영(전 북한 문예총 위원장)의 아들 이종혁은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으로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교류 전면에 나섰다. 만일 우리 정부가 유미영과 이종혁 등을 월북자나 그 후손이라고 거부했다면 갈등과 반목만 더했을 것이다. 주사파까진 아니라고 해도 NL(민족해방)계 운동권 출신이었던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27일 “불편한 사람도 포용하는 게 바로 통일 연습”이라며 북한에 ‘어른스러운 대응’을 주문했다.

 30일 외통위원들의 개성 방문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공언해온 유훈정치는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다. 그 말이 유효하다면 선대(先代) 때 벌어진 유미영의 서울 방문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조명철의 방북과 무사 귀환을 담보해주라”는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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