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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지금이 미래를 걱정할 때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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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미래에 대한 화두를 꺼내기가 매우 거북하고 걱정스러운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계속되는 불황 속에 국민과 기업은 힘든 형편에 처해 있다. 그런 가운데서 정치권과 언론은 미래보다는 과거에 얽매인 흙탕물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눈앞으로 다가올 2015년이나 2030년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한가한 사치로 느껴질 뿐이다.

 이렇듯 현재와 과거에 얽매여 미래에 대한 전망과 기획능력이 마비되는 현상은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예외 없이 겪고 있는 유행병인지도 모른다. 지난 한 세대에 걸쳐 시장과 생활양식의 급격한 세계화 과정 속에서 개발과 발전에만 전력투구한 결과, 뒤늦게 그 발전이 잉태한 모순과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정부 폐쇄와 국가부도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미국의 경우도 그러한 유행병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우리의 경우는 국가운영의 초점이 한군데로 맞춰지지 못한 채 대통령과 정치권이 당면한 국가적 위기의 성격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정치의 분열증이 가장 큰 문제다.

 대통령은 지구촌의 공동과제를 풀어가는 미래지향적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발전 동력을 확보하는 데 그의 정치력을 집중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되는 정상외교는 차치하고라도 세계에너지총회,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 유라시아시대 국제협력회의에서 사흘 연이어 기조강연을 한 박근혜 대통령은 의식적으로 미래에 대한 도전을 강조하며 정치권의 혼전에 거리를 두고 있다. 반면 야당이 이니셔티브를 잡은 정치권에선 국정원 댓글, 정상회담 회의록, 역사교과서 등 가깝거나 먼 과거사 문제를 가장 시급한 국가과제로 설정해 여야 간에 혼란스러운 총력전을 여러 달째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격앙된 한국정치의 전투적 분위기에서 지구촌과 한국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끼어들 틈새조차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이대로 허망하게 세월을 보낼 수는 없다. 한때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모범생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우리가 좌초와 새로운 도약의 갈림길에서 맥없이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첫째로 양(量)에 못지않게 질(質)을 감안한 인간 중심의 새로운 발전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기 위해 국민의 마음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대통령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여야의 뜻이 모아지고 국민의 믿음이 뒷받침될 수 있도록 광범위한 대화의 장에 적극 나서야 하겠다. 국민들의 희망사항이나 세계사의 흐름을 애써 외면하려는 지도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둘째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그간의 성공은 세계화란 순풍에 돛을 맞춘 결과였음을 명심하고 이번에도 지구촌의 공동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될 것이다.

 마침 유엔이 2000년에 출범시켰던 ‘새천년발전목표(MDG)’가 일단 종료되는 2015년에 2030년까지의 새로운 15년 계획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란 범세계적 공동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MDG는 지난 13년 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빈곤감축을 이루어냈다. 하루에 1.25달러 이하로 연명하던 극빈인구를 적어도 5억 명 이상 줄이는 데 공헌한 그 노력을 2015년부터 경제·사회·환경, 세 차원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지속가능해법네트워크가 가동될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입각한 해법을 발전목표에 연계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공공정책을 현실화하는 국가적·지역적·세계적 네트워크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2주 전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의 한국 조직이 출범하는 서울모임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고문인 제프리 삭스 교수는 이 네트워크를 주창하고 추진하는 중심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있다는 것, 한국은 에너지의 주요 수입국인 동시에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2배가 넘는 나라이지만 녹색성장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지속성장의 해법을 제공할 고도의 기술력을 지닌 국가라는 것 등을 열거하면서 한국이 스스로의, 그리고 지구촌의 지속발전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이란 국제사회의 기대를 전달했다.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과 모래를, 2030, 2050 그리고 22세기로 넘어가는 미래를 걱정하고 꿈꿀 수 있는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인내력과 창의력으로 오늘에 이른 한민족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아무리 과거사에 대한 원한과 미련이 있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답답함이 있다 하여도 보다 나은 그리고 아름다운 미래를 기획하고 열어가려는 걱정을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