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가짜「청자」유감|조병화(경희대 교수·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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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로 믿는다는 건 인간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아름다움이다. 때문에 「사기」 「배신」「약속 불이행」 등은 인간생활을 파괴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가장 큰 암이 되고 있는 건 이 불신 사조다. 서로 믿지 않는 풍조다. 아니, 서로 믿지 못한다는 풍조다.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불쾌하게 살아가는 이 우울과 불안, 여기에 우리들의 고독은 있는 거다.
불량식품·불량약품·불량음료·불량화장품 등등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공포 속에 우리는 살고있는 건가. 공해라 하지만 이것처럼 무서운 공해가 어디 있으랴. 술을 속인다, 먹는 음식을 속인다, 먹는 약을 속인다-이러한 나라에서 건강한 국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아편전쟁도 있었지만 이건 더 무서운 국민자멸의 현상이다. 신문들은 가짜 「청자」담배의 대량생산자를 고발하고 있다. 참으로 치사한 일이다. 담배 하나를 제대로 지켜가지 못하는 나라, 한심한 노릇이다. 맛이 좀 낫다해서 그것만 찾아 피우는 소비자들도 안됐고 가짜를 만들어 내는 자는 더욱 나쁘지만 가짜가 재미보도록 올바른 담배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 내는 당국에도 책임이 있다. 「파고다」가 그랬고, 「신탄진」이 그랬고, 이번 「청자」가 또 그렇다. 차라리 국가전매를 버리는 게 체면이 설 것이다. 국민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는 나라, 잘 된 나라가 없다. 나라와 정부는 물론, 다른 거지만…. 이럴 때마다 통절히 생각되는 건 믿는 나라, 믿는 정부, 믿는 국민, 서로 믿고 살수 있는 서로의 민족국가다.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건 교묘한 사기수단 뿐이다. 고도한 악질적인 인간두뇌, 그것같이 무서운 공해가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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