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FAO간부로 활약하는 해양학 박사|아비잔(아이버리코스트) 홍사덕 순회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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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장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
『예산만 확보되면 2년 내로 찾을 수 있습니다.』
해방 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정어리 떼 얘기를 끄집어내자 그는 자신 있게 잘라 말했다. 회유어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길을 바꿀 뿐』이므로 그 바뀐 길만 찾으면 또다시 정어리대풍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럼 지금 당장….』
한국에 돌아가서 우선 「정어리 떼 찾기」부터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꼬리를 잡았다.
좀 짓궂다고 생각했지만 15년 이상 해외생활만 계속해온 이 해양학계의 세계적 권위가 어떤 식으로 대답할 것인가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에어컨」의 잔잔한 소음 속에서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대답대신 그는 타는 듯한 눈으로 책상 위의 자기명패를 쏘아보고 있었다.
「FAO 서아 지역 수산개발총지배인 이형철 박사」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 박사의 시선에서 불길이 꺼지고 천천히 얘기가 시작되었다.『연3만「달러」의 수입이 아쉬워서는 아닙니다.』 지금 당장 귀국해서 일하지 않는 것이 돈 때문은 아니라는 서두였다.
사실 그의 학자적 인품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에 오기 전 이미 「파리」에서부터 잘 듣고있었다. 서울대·동경도립 대를 거쳐 61년 「파리」대학에서 해양학으로 국가박사 위를 딴 뒤 그는「돈과 지위의 유혹」속에서 살았다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학위논문『지중해에 있어서의 정어리어군 조사방법』이 발표되자 인구폭발의 해결책을 바다에서 찾으려던「유럽」제국이 갖가지 조건을 앞세워 귀화 내지 고용계약을 요청했던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는『「코란」을 든 회교도처럼』 귀화를 독촉했었다고 주위의 K씨가 전했다.
『당장에 귀국할 수 없는 이유를 꼭 집어 말하라면….』
한참 생각 끝에 이 박사는『장인기질』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림에 미친 사람이 화구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은 『고기떼를 찾아내는 재미』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에다가 연구자료는 무진장이지요. 이걸 앞에 놓고 내가 손이 묶였다고 생각하면…. 마치 아름다운 전원 속에「밀레」를 살게 하고서 화구를 빼앗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나는 그보다 더 괴로울 겁니다.』
검붉게 탄 얼굴이 더욱 상기되면서 이 박사의 눈은 다시 불붙었다. 그는 자신이 현재 연5백만「달러」의 예산을 집행한다거나 50여명의 전문가가 그의 지휘하에서 연구하고있다는 사실 따위를 구태여 들추지 않았다.
그러나 대서양곳곳에 조사선박이 「항해 중」임을 표시하고 있는 탁상지도는 그의 연구규모를 응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FAO에서 국제공무원으로 일한다고 해서 고국에 봉사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서부「아프리카」해안에는 70여 척의 한국원양어선이 출어 중이므로 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큰 기쁨의 하나』라고 말했다. 참치어군이 집결해 있는 곳을 가르쳐준다거나 어획기술상의 개선점 같은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일러주므로 『몇몇 눈치 빠른 선장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오거나 무전교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박사의 견해로는 한국 원양 어선 단은 세 가지의 치명적인 결점을 갖고있다고 지적했다. 어군조사의 기획성 결여, 낡은 어획법, 후생복지시설의 미비 등이 그것이다. 어군조사의 경우 우리어선 단은 순전히 선장의 청기와 장수식 지식과 육감에만 의존하는데 반해 일본은 각 어선이 조업지점과 그곳에서의 성적을 의무적으로 보고, 그 분석결과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어호 방법에 있어서도 우리어선 단이 쓰고있는 주낙 식은 3∼4년이나 뒤진 것으로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선망 식을 쓴다고 지적했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우리어선 단은 일본회사에서 주낙을 사들임으로써 그들의 재고품정리만 돕고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박사는 또 1천 7백여 명의 어부들이 나와있으면서 단 한 명의 의사도 파견치 않는 것은 『인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얼마 전 어군정보를 얻기 위해 들렸던 한 선장은 출어 중에 맹장염 환자가 발생, 할 수 없이 『식도와 「머큐롬」만 가지고 수술했다』고 얘기하더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 박사는 해양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열쇠」라고 말한다. 37년마다 갑절씩 늘어나는 세계인구는 1세기 뒤, 2백 90억에 이르므로 『바다를 효과적으로 개발하지 않는 한』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한국도 너무 뒤지지 않도록 해야지요. 자칫하다가는 크게 당합니다.』
예컨대 현재 서「아프리카」해안에 출어 중인 우리 원양어선단도 『어쩌면』 내년부터는 조업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귀띔해줬다. 이번 가을에 열릴 서「아프리카」 해안국 회의에서 현재 6「마일」로 되어있는 해양자원 보호 선을 1백 50∼1백 80「마일」로 『늘릴 공산이 크다』는 얘기이다. 참치 잡이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일·자유중국이 『연합전선을 편다해도 보호선의 대폭확장은 이미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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