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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제13화>방송 50년(8)|이덕근(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방송 차단기>
일본 사람들이 경성 방송국을 세운 목적은 한국 민족의 이른바 황국 신민화를 위한 식민 계획의 하나에 있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따라서 방송이 생긴 1927년부터 방송내용은 사전 검열제도였다. 먼저 방송 원고를 만들어 이를 체신국 검열과에 보내 검열을 받았는데 검열관은 빨간 연필로 줄을 그어 삭제를 표시했었다. 연극 등의 대본 등은 미리 제출하여 시일을 두고 검열을 받았고 뉴스 등 급한 것은 전화로 알려(보고)주었다.
이 사전 검열을 통과한 원고가 제대로 방송되느냐 하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 이른바 감청이란 것이었고 이를 위해 감청 직원이 방송국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감청 직원으로는 권오용이란 사람이 오래 있었다. 정동 연주소의 아나운서 실 한 구석에 책상이 있어 권씨가 앉아 잇고 책상에 이른바 방송 차단기의 버튼이 있었다.
권씨(고인)는 검열에서 삭제된 부분이 방송된다든가 사전 검열된 원고에 없는 말이 나갈 때는 즉시 체신국에서 벨을 눌러 방송 중지를 요구하게 돼 있는데 재량권의 범위가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방송국 개국 초에는 야근하는 직원들이 감청까지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야근을 하는데 한 사람이 방송하면 다른 사람이 감청을 하곤 했다.
이렇게 되니 야근에 걸리면 밥 먹을 틈도, 변소 갈 틈도 없었다. 트랜지스터가 없을 때이니 라디오를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었다. 물론 체신국 쪽에서 감청을 하지만 이것은 자체에서 다시 감청하는 것이었다.
1934년의 일로 기억되는데 한번은 남자 아나운서가 7시 방송에 들어가고 여자 아나운서는 7시30분의 강연방송에 나온 연사를 안내하여 다른 스튜디오에 있게 되어 감청 자리가 비게 되었다.
7시30분에 강연이 시작되는 것과 뉴슨 가 끝나는 것과는 동시이지만 남자 아나운서는 뉴스가 끝나자 곧 돌아와 감청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뉴스를 끝낸 아나운서는 먼저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느라고 잠시 감청 자리를 비웠는데 마침 강연 내용이 저촉되어 체신국 감청실에서 방송을 중단하라는 벨이 마구 울렸다. 그러나 변소에 있는 사람이 알 리가 없어 강연 방송은 그대로 나가 버렸다. 난리가 났다.
그날 밤 체신국의 감청 당국과 아나운서 사이에는 책임 추궁과 변명으로 큰 야단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강연 내용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고 또 생리적 현상을 이기는 방법이 없다 하여 감청 직원을 늘리는 것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이때 권씨가 들어온 것이다. 방송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기는 1934년 2월부터인 것으로 기억된다.
전회에서 언급한 바대로 방송심의회가 발족하자 한달 치 방송 프로그램 제출을 요구했고 방송 차단기란 것이 맹위를 떨쳤다. 방송 차단기는 방송 중지 요구의 벨을 누르고 대신 차단기 버튼을 누르면 방송이 보내 자동적으로 중지되도록 강화된 것이었다.
이쯤 되니 별 도리 없이 자주 방송이 끊겼다.
일본 사람들이 방송의 검열을 강화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경성 방송국은 10㎞의 출력으로 방송하고 있었는데 소련의 하바로프스크와 중국의 남경 지방에서 한국을 향한 방송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괴 방송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독립운동 등을 벌인 상해 임시 정부 등에서 보내는 것이었다. 일본 관헌은 이의 청취를 막으려고 이른바 전파 취췌법을 강화한 것이었고 총독부의 경무국은 괴 방송 탄압에 골치를 앓았던 것이다. 그래서 감청 직원의 증원과 함께 라디오 취에 계원을 늘려 탄압을 꾀했던 것.
결국 총독부는 하바로프스크 쪽에서 들어오는 괴 방송을 막기 위해서 1937년의 중·일 사변이 터진 때부터 청진에 방송국을 세우기 시작하여 1941년에 개국하자 곧 러시아어 방송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는 일이지만 중·일 사변 발발 직후인 1938년4월에 총독부는 『소련 및 남경에 대항하는 강력 전파시설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경성 방송국 제2방송의 10㎞를 50㎞로 확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 아래 놓이게 되니 방송 차단기는 무장의 힘을 가진 것으로 등장하여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방송이 끊기고 연사와 배우들이 연행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1942년으로 기억되는데 토요회라는 연극단체가 월요일이란 제목의 방송극을 한 일이 있었다.
복혜숙 전옥 등이 출연했는데 내용은 프랑스의 이야기였다.
혁명이 끝난지 오래 되었다는 내용인데 대사의 한 구절에 『군국주의가 타파 된지 벌써 옛날이요』하는 대목이 있었다. 대본에는 붉은 연필로 삭제되어있었는데 전옥씨가 맡은 역이 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연극도중 전옥씨는 삭제된 부분을 그대로 말해버렸다. 방송 차단기가 덜커덕 내려지고 전옥씨와 복혜숙씨가 연행되었는데 전옥씨는 경찰에서 삭제된 줄 몰랐다고 우기는 바람에 문제가 더욱 시끄러워져 3일 구류를 살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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