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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감 이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의 주부들은 목요일을 기다린다. 아니, 목요일 석간 신문을 기다린다고 해야 정확하다. 퇴근길에 남편들이 사온 석간을 받으면 부산하게 페이지를 넘긴다. 어떤 신문은 부록 판을 내기도 한다. 무엇을 그렇게 기다리고 또 찾는 것일까. 닉슨의 기자 회견은 분명 아니다. 핑퐁 외교도 아니다. 재클린의 보석 얘기도 물론 아니다.
이날, 목요일은 미국의 모든 신문들이 「바긴·세일」의 광고를 내는 날이다. 신문마다 장장 2, 3 페이지씩 전면에 깨알같은 활자로 세일즈 광고를 싣고 있다.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주말 「붐」을 이용한 광고이다. 주부들은 이날이 되면 그 광고 페이지를 펴고 상품들마다 일일이 「언덜라인」을 긋는다. 하나하나 따져서 싼 쪽의 상품을 체크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1주일 동안에 쓸 생활 필수품들을 이렇게 거두어들인다. 왜 하필이면 이날일까?
「바긴·세일」은 대개 25% 내지 50%의 할인 판매를 하기 때문이다. 귀중품에서부터 버터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이날만은 모든 백화점들이 박리다매주의이다. 미국 주부들의 알뜰한 살림 솜씨는 평일의 쇼핑을 삼가고 이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메이커」나 상인들도 별로 손해를 볼 것이 없다. 비싸게 조금 파나 싸게 많이 파나 그 타산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생활 습관조차 「민주화」의 미덕을 십분 이용하는 셈이다. 기업주들도 그 요량에 맞추어 첫 목요일과 세 번째 목요일에 급료를 주기도 한다.
요즘 일본에선 난데없이 「화장품 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시세이도」니 하는 이름난 메이커의 상품들이 아니다. 한 개 당 1백원 균일(일화)의 화장품들이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주고 있다. 시장에 얼굴을 보인지 불과 30일만에 무려 1백20만개의 상품이 팔렸다. 『마치 뜨거운 쟁반 위에서 물방울이 증발하듯』1백원 짜리 화장품들은 팔리고 있다.
어떤 백화점은 에스컬레이터까지 고장이 났다고 한다. 고객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 화장품을 팔고 있는 백화점들은 그 동안 수위들을 배로 증원했다. 고객 쇄도를 그렇지 않고는 정리할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즐거운 소동이 벌어지고 있을까.
일본의 유력한 소비자 단체의 하나인 「전국 지역 부인 단체 연락 협의회」회원들은 공연히 장식만 요란하고, 또 그 상품들의 유통 과정이 복잡 미묘하여 알맹이의 원가와는 엄청난 격차를 보여주는 고가 화장품들에 일대 반기를 들고나선 것이다. 『품질은 더욱 좋게, 값은 더욱 싸게』운동을 여성 소비자 스스로가 벌여서 화장품 공장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입술만의 운동」이 아니라 행동의 여성 운동을 보여주는 귀감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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