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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군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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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약 250여 차례에 걸쳐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에서 2억 명 이상이 죽었다. 이전 2000년간 모든 전쟁에서 죽은 희생자보다 많다. 그래도 사람들은 서로 못 죽여 아등바등이다. 전 세계 모든 군사비를 합하면 1분에 100만 달러, 하루에 2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한다. ('군축과 비확산의 세계')

지옥과 같은 전쟁을 겪은 뒤 사람들은 '안보를 이유로 한 군비경쟁'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군비확장 없이 안보를 지키는 새로운 개념을 모색했다. 그게 군축이다.

근대적 군축 개념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1795년 '영구평화론'에서 상비군 삭감의 형태로 주장했다. 군축 개념은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느리게 퍼졌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란 난리를 겪고도 세계는 정신을 못 차렸고 군축은 흐지부지됐다. 그 결과가 제2차 세계대전이다.

진짜 군축은 2차 대전 뒤 '핵 감축'을 중심으로 본격화됐다. 냉전시대 '핵 공격으로 인한 상호 공멸'을 피하려고 미국과 소련은 군축에 애를 썼다.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 전략무기제한협정(SALT1), 중거리핵미사일 폐기조약 등이 그 산물이다.

세계도 유엔을 중심으로 호응했다. 1960년에 설치된 유엔 산하 제네바 군축회의(CD)는 세계 유일의 다자 군축협상기구다.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PTBT.63년), 핵확산금지조약(NPT.68년), 생물무기금지협약(BWC.72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96년) 등을 이끌어 냈다. 다만 CTBT가 발효를 위해 아직 진통을 겪고 있다.

남북 대치로 인해 '군축 예외지대'처럼 여겨진 한반도에 불쑥 군축이 등장했다. 북한이 최근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전환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한반도의 핵심 이슈인 '핵무기 관리'에 아주 비협조적이다. 핵 군축의 핵심인 NPT를 최초로 탈퇴한 나라가 됐고(2003년), CD에도 96년 가입했지만 가장 중요한 문서인 CTBT엔 서명도 안 했다. 핵이용 감시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도 94년 탈퇴했다.

북한이 진정 군축을 원하면 NPT에 재가입하고, 핵실험을 안 한다는 약속을 하는 게 먼저다. 그런 것 없이 다짜고짜 "군축회담을 하자"고 덤비니 진실성을 의심받고, 북한에 동정적인 사람들마저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