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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천년 슬기의 산실 백제 요지군 발굴-국립 박물관 조사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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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백제시대에 토기 그릇과 기와를 굽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유적이 도읍지 부여 가까운 강기슭에서 드러나 국립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고 있다. 최순우 박물관 미술 과장이 인솔하는 발굴 조사반은 충남 청양군 청남면 왕진리의 10여 요지군 가운데 도기를 굽던 평면 가마 (평요) 1개와 기와 및 전을 구워낸 계단식 등요 3개를 발굴, 옛 가마의 구조와 제작 기술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삼국시대 산업 기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요지가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일 뿐더러 지하에 당시의 상황을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예가 고려·이조 것에도 없기 때문에 관계 학계는 이번 성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소산 뒤쪽으로 금강을 따라 오르는 뱃길 5km에 위치한 요지는 땅속 2m 깊이에 묻혀 있었는데 홍수가 강 안을 침식함에 따라 근년에 비로소 노출된 것이다. 본시 생 땅에 굴을 뚫어 만든 이곳 가마들은 벽이 모두 돌덩이처럼 소성 돼있어 내부가 전혀 교란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가을 전 부여 박물관장 홍사준씨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답사, 백제 특유의 문자 도장이 찍힌 기왓장을 채집함으로써 중요한 와요지로 알려져 왔다. 지난달 18일부터 보름동안 진행하는 제1차 작업에는 정량모 강인구 이회구 제씨가 참가하고 있다.
강안 단구에 나란히 뚫려 있는 가마 굴 중 중앙에 있는 도기 가마는 평면의 요상 (가로 세로 2m)에다 정자 모양의 고래를 팠고 특히 굴 뚝 밑으로 별도의 연실을 설치한 점이 매우 주목되고 있다.
이제까지 토기가 어떻게 구워졌는지 알 수 없었던 터에 이러한 가마의 구조는 당시의 제도술이 아주 발달된 것이었음을 설명해준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즉 연기를 가둬 두는 방은 화력을 조절하고 환원염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오늘날의 가마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최순우 문화재 위원은 이곳 토기의 태토 수비나 구연 및 지문 등으로 보아 6세기경 제작된 고도에 속한다고 말하면서 1천도 내외로 구워진 도기와 기와들이 사찰이나 궁실 용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짚어봤다.
7층의 계단으로 된 그 밖의 등요들은 모두 기와 가마로서 대부분이 무교의 평와. 그런데 기와마다「오늑」「오지」「오사」「인」「신」「도」「기」등 도장이 찍혀 있고 또 약간의 연판문 숫막새도 나왔다. 굴의 깊이는 6m 정도이고 폭이 1·8m.
이러한 요업 기술은 일본에 건너가 현재 남아 있는 유구도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단 한군데 밖에 없는 이곳 요지는 굴들이 드러난지 20년도 못되어 그 앞에 있었을 작업장이나 퇴적층이 송두리째 하상에 쓸려 버렸고 굴마저 화구 쪽이 홍수로 깎여져 나갔다.
그래서 이의 보존 문제가 시급한 실정이나 웬만한 방벽을 쌓아도 홍수를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므로 『박물관으로 파다 옮기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김원룡 박물관장은 말한다. <부여=이종석·임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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