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필자들 "오류는 고치겠지만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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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교육부로부터 수정·보완 권고를 받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의 반응은 미묘한 온도 차를 보였다. 지난달 15일 교육부의 수정 방침에 반발해 교학사를 제외한 7종 교과서 저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수정 권고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던 것과는 달라진 양상이다.

 22일 본지가 통화한 교과서 집필자 중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은 천재교육 교과서를 대표 집필한 상명대 주진오(역사콘텐츠학) 교수였다. 주 교수는 “교육부의 수정·보완 권고는 불법이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교과서들이 교학사 교과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교육부가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며 “수정·보완 권고는 정치적으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내용상 오류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자체 논의를 통해 수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집필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의 문제라면 모르지만 사실 관계에 대한 타당한 권고는 수용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두산동아 교과서를 쓴 연세대 왕현종(역사문화학) 교수는 “우리 교과서가 받은 수정·보완 권고 중 70%가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미래엔 교과서 필자 중 한 명인 순천향대 김기승(국제문화학) 교수도 “해석적인 부분은 교육부가 한쪽 관점에서 봐서 지적을 한 것 같다”면서도 “틀린 사실 부분은 당연히 고쳐야 한다”고 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군산대 김종수(사학) 교수는 “69건을 고치라는 지적이 나왔는데 상당히 지엽적이고 오히려 교육부 지적이 틀린 것도 많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우리 교과서에서 명백히 틀렸고, 교육부가 옳게 지적한 것은 당연히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의 교과서 필자들은 “조만간 집필진이 모여 논의를 하기로 한 만큼 개인 의견을 밝히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우편향’ 지적을 받던 교학사 교과서의 저자들은 나머지 7종과 달리 지난달부터 “교육부의 수정 권고를 수용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교육부는 집필진과 출판사가 권고안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다음 달 1일까지 내도록 요구했다. 7종 교과서 집필진이 애초 밝힌대로 교육부의 권고를 집단적으로 거부할지, 아니면 출판사별로 개별 대응할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교육부는 수정·보완 권고를 거부하는 출판사와 집필진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수정 명령을 내린다는 입장이다. 권고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출판사와 집필진에 대해선 수정안의 내용과 수준을 심사해서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수정 명령을 하는 것보다는 집필진이 권고를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다. 2008년 ‘좌편향’ 논란을 빚던 금성출판사 근현대 교과서에 수정 명령을 내렸다 문제가 된 경험 때문이다. 당시 출판사가 교육부 명령대로 교과서를 수정하자 이에 반발한 필자들은 교육부를 상대로 “수정 명령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교육부가 수정 명령을 내리려면 검정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래 고교들은 10월 11일까지 교과서 선정·주문을 마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교과서 선정이 11월 말로 늦춰졌다. 신학기에 쓸 교과서 제작을 마냥 늦출 수도 없고, 이때까지 검정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 수정 명령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교육부의 부담이다.

성시윤·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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