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당과 대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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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25국회의원 총선의 최종적인 개표결과가 거의 판명되었는데 전국구 의석 분배까지 포함하면 공화당이 1백13석, 신민당이 89석, 그리고 그밖의 군소정당이 2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승리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야당의석의 비율로 따지면 우리나라 헌정사상 초유의 기록으로서 괄목할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야당이 이처럼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된 것은 공화당 영구집정에 대한 의구심, 여당독주에 대한 견제의식이 은언중 많은 유권자들의 마음속을 지배하게된데다가 압승을 과신했던 공화당이 선거전 막바지에 가서 압승 뒤에 올 후유증을 크게 우려하고 선거의 과열을 자제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의석 차 접근으로 사상 초유의 이상적 헌정운영의 길 터져>
본래 여야의 의석 차가 근소하다는 것은 의회정치의 이상적인 운영조건에 대폭 접근한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환영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여야가 매우 근소한 의석 차를 가지고 의회에서 대결하게 된 것은 이 나라 헌정상 초유의 일이므로, 자칫 운용의 묘를 얻지 못한다고 하면 오히려 정치적인 혼란과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인데, 이런 가능성을 제거키 위해 우리는 양당에 대해 각각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하고싶다.
먼저 집권당은 압승을 거두지 못한데 낙망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국안정에 필요한 과반수 선을 넘는 의석을 갖게된 것을 의회 민주정치의 올바른 전진을 위해 다행한 것으로 알고 당내결속을 더욱 굳건히 하는 한편, 의사를 진행하고 안건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항상 반대당과 협상하고 호양타결로써 해결을 짓는 작풍을 세워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솔직이 말하여 우리나라 의회정치, 특히 제3공화국하의 의회정치에 있어서는 여야간 의석의 심한 불균형으로 소수당의 존재와 의사가 늘 무시되어 왔기 때문에 토론과 타협을 위주로 하는 의회정치의 본도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폐단에 대한 염증이 바로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로 하여금 야당의 대폭적인 진출을 가능케 하는 투표성향을 낳게 한 것이라고 도 볼 수 있다. 여당은 이점을 잘 인식하고 여야간 의석수의균형접근으로 우리 헌정상 처음으로 의회다운 의회를 구현시킬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었음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해야한다.
여당은 의석수 차가 너무 적기 때문에 정부시책을 실천에 옮기는데 일말의 불안을 느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권력구조를 갖고있는 미국에서는 가끔 대통령이 속하는 정당이 아닌 반대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는 경우가 생겨나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정책공약을 권력적 집행으로 옮기는데, 별로 지장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한다. 대통령은 그가 속하는 정당이 원내에서 차지하고있는 의석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정책구상을 원만하게 실천에 옮기기 위해 꾸준한 설득으로 반대당의 초당파적 협조를 얻도록 해야 한다.

<「대여당」의 아량과 초당파적 협조 자세의 추구>
앞서 박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4년 임기 뒤에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약함으로써 3선의 영예를 차지했었다. 이번 야당의 놀라운 원내진출로 보아 앞으로 4년 후에는 어쩌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박대통령은 집권태세를 재정비하면서 정부권력의 기초를 범국민적 규모로 확장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일당일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전국민의 추앙을 받는 대통령이 되어주기를 염원한다.
다음 신민당은 대통령선거전에 있어서 일패도지 하였다가 예상외로 의회에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차기 총선에서는 집권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을 굳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민당은 이번 총선에서의 야당의원의 대량 진출이 반드시 신민당이 잘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집권당 독주의 견제를 바라는 국민의 정치적 반사심리의 반영임을 자각하고, 진정으로 국민의 신임과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되도록 자중하는 노력을 더욱더 해야 할 것이다.
신민당은 총선 입후보 등록 마감 직후에 터진 「진산 파동」을 본격적으로 수습하지 못한 채 선거전을 치렀으므로 곧 이 문제부터 해결치 않으면 안될 형편에 놓여 있으며, 또 이 「진산 파동」의 수습은 당권투쟁과 직결되어있다. 앞으로 신민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지도체제를 민주적으로 개편하는데 있어 당내의 불투명한 분자들을 과감히 숙청하여 「선명 야당」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나가는 한편, 문호를 활짝 개방하여 재야민주세력을 계속 흡수함으로써 정권인수 태세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신민당은 이번 선거결과로써 자신들도 미처 기대못했던 『덩치 큰 의회정당』이 되었다. 따라서 차기집권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갖게 된 그들이 스스로 분열·와해의 징조를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가능성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야당의 당권투쟁이 격화하고 정치부패에 물 들 공산이 크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민주적인 인화를 얻는데 각별 유의 해야할 것이다.
야당이 집권당의 독주를 견제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야당에 의한 「견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도 한번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견제란 결코 무조건적인 반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 의미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여당이 내놓은 안건이 국리민복에 부합하는 것이고 야당측의 이해와 동의를 성실히 촉구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 안건의 통과를 반대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야당이 원내에서 여당에 대해 걸핏하면 반대를 해온 것은 여당이 소수당의 존재를 숫제 무시한데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제8대 국회에 있어서 야당은 양적인 면에 있어서 결코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커졌다.

<「대야당」 출현과 책임있는 정책대결 자세의 견지>
실로 2백4석의 국회의석 중 신민당이 그 44%선인 90석을 차지했다는 것은 헌정운영상 법적으로도 막강한 힘을 야당이 가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제 신민당은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게 됐음은 물론, 신민당 단독으로도 의사정족수(재적의원 3분의1이상 출석이 필수조건)를 확보함으로써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 임기중 언제든지 국회의 문을 열어놓고 갖가지 중요안건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야당은 언제든지 단독으로라도 국무위원을 출석케 하거나 그 불신임안을 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시로 강력한 국회감사권을 발동하여 행정부에 대해서도 강력한 견제의 힘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야당 역시 이제는 스스로 대정당다운 태도를 가지고 여당이 제안한 안건이라도 찬성할 것은 찬성하고 반대할 것은 논리 정연하게 반대하는 등 책임있는 정책정당으로서의 자각과 큰 도량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5·25총선의 결과로 우리헌정사상 처음으로 대여당과 대야당이 함께 출현, 우리나라 민주정치의 앞날에 전례없는 희망을 안겨준데 대해 큰 고무로 느끼면서 여야는 이제 일절의 선거후유증을 불식하는 문제에서부터 허심탄회한 협력의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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