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사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독일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던 영하원을 어떻게 재건하느냐 하는 문제가 1943년의 가장 큰 논제로 등장했었다. 이때 「처칠」수상은 전통적인 의석배치를 살리자는 안에 편들었다.
『장방형으로 배치된 여야의 의석에서 서로 마주 앉아 있노라면 그 사이의 넓은 통로를 거쳐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간단히 정실에 의한 이합집산도 피할 수 있읍니다….』
『또 의장이 좁으면 토론에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어, 의견의 교환이 순조로와집니다. …반월형의 의석배치는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를 즐기는 이 논가의 탄생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절대로 어울리지도 않고 타협도 허용치 않는 소당 분열을 막아 줄 것입니다.』
「처칠」의 뜻대로 영하원은 옛 그대로의 모습을 찾았다.
대륙제국의 의장은 반월형이며, 광장처럼 널찍하다. 자연히 웅변조의 아우성 판이 된다. 장관석이나 연분도 의원 석보다 한층 높다. 평등한 기분의 토론이 성립될 까닭이 없다.
그러나 토론이 의회정치의 생명이라 여기는 영국에서는 의원의 발언을 연설(speech)이라 하지 않고 토론(debate)이라 한다. 연설은 일방 통행적이지만 토론은 쌍방통행인 것이다.
1945년 수상의 인수를 받자 「애틀리」는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를 비평하고 정부의 입법에 반대하고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반대당의 권리이며 의무입니다. 여기 대하여 정부의 직무는 그 정책을 입법화하는데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당이 야당에 양보하고 야당에도 속보를 바라는게 원칙이다. 만일에 야당의 주장이 무시된다면 야당의 존재이유는 없다.
야당이 표결에서 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의회내 토론에서 몇표로 이기느냐는 것보다 얼마나 활발한 토론이 전개됐느냐가 문제된다.
한 정당만이 진리를 항상 갖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의회가 있을 필요도 없다. 야당측 발언의 봉쇄는 민주주의의 사망증명서를 떼는 것이나 같다.
정치가 타락하는 것은 야당이 약할 때이다. 유명한 역사학자 「악톤」경은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말했다. 또 「이탈리아」의 수상 「카불」은 『수상으로서 제일 약하고 심약해지는 것은 의회 폐회중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야당측 비판이 없으면 자기의 실책·결점을 알 길이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8대 국회의원 선거도 이제 끝났다. 누가 당선되고 ,어느 당이 몇표나 더 이겼느냐는 것보다 새 의사당에서는 어느 만큼이나 알찬 토론이 가능해질 것이냐는 게 훨씬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여기 달려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