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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 부자증세 철회 … 접점 보이는 독일 좌·우 대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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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독일 집권 기민당(CDU)과 제1야당인 사민당(SPD)의 좌우 대연정 공식 협상이 23일(현지시간) 시작된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사민당은 20일 의원 총회에서 지그마어 가브리엘 당수에게 협상 권한을 위임했다. 양당은 지난 17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비공식 대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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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브리엘 대표는 10개의 연립정부 구성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시간당 8.5유로(약 1만2350원)의 최저임금제 시행, 남녀 임금 차별 철폐, 사회기반시설과 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독일·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8개국)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이 핵심이다. 이와는 별도로 6개의 장관직을 사민당에 분배할 것도 원하고 있다.

 기민당 당수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최저임금제는 일부 업종에 부분적으로 적용할 수 있지만 산업 전반에 보편적으로 시행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노동시장이 경직돼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날 수도 있다고 지적해 왔다. 따라서 이번 협상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기민당은 동일 노동에 대한 남녀 임금차 철폐도 법적으로 규제할 사안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사회기반시설과 교육에 대한 투자와 성장촉진정책은 수용될 가능성이 큰 제안이다. 총선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도 긴축정책으로 수년간 미뤄 온 사회적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국가들에 대한 긴축완화 요구도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내다봤다.

 사민당은 10개 항에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부자 증세’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선거운동 때는 소득세 최고 세율을 42%에서 49%로 올리자고 했으나 협상안에서는 제외했다. 이에 따라 협상이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가브리엘 당수는 “성탄절 전까지는 정부 구성을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기반시설 및 교육 투자 확대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하느냐를 놓고 양당이 대립하게 될 가능성은 있다. 메르켈 총리는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을 거부해 왔다. 지난주에 진행된 기민당과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도 증세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 돼 결렬됐다.

 각료직 배분도 메르켈의 고민거리다. 사민당은 총 22개의 장관 자리 중 재무·노동·가족 등 6개 부처 장관직을 요구하고 있다. 메르켈 집권 1기(2005∼2009년) 때에도 같은 수의 장관을 사민당에 내줬다. 당시 메르켈은 경제정책을 둘러싼 정부 내의 갈등을 경험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유임을 주장할 수도 있다. 사민당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메르켈 총리에게 연정 협상의 고통을 안긴 것은 집권 2기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FDP)의 몰락이다. 자민당은 지난달 22일 치러진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그 바람에 기민당은 과반에 육박하는 대승을 거두고도 좌파 야당과 연립정부를 꾸려야 하는 입장이 됐다. 메르켈 총리는 ‘검은 과부(Schwarze Witwe)’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사민당·자민당 등 메르켈 총리와 연정을 한 당은 다음 총선에서 대패했기 때문이다. 3선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가 노련함을 바탕으로 연정을 지배할 경우 사민당은 당의 정체성을 잃고 휘둘릴 수 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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