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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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치적 무관심」은 현대 정치학에서 상당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비정치적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국민의 적극적 충성이나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은 정치적 무지나 통치자에 대한 맹종에서 비롯된 것은 물론 아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왜 관심이 없는가.
정치학자의 견해는 다양하다. 우선 대중 문화의 만연을 지적한다. 대중 문화라면 3S를 생각할 수 있다. 스크린, 스포츠, 섹스. 스크린은 오늘날 TV로 바뀌고 있다. 스포츠는 대중 오락의 심벌로서 필요 이상으로 대중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소시민적인 취향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종 사회 집단의 방대한 발달은 그 내부에서 정밀한 분업화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터무니없는 허무감을 불어 넣어준다. 사람들은 언제나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정치 따위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이른바 아노미(anomie)를 말하는 학자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무정부 상태이다. 신념도, 의지도, 도덕적인 가치도 모두 잃어버리고 사회 성원이 오로지 환멸에 빠져 있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아노미 증상에 걸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비생산적이며 다만 자기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자기 바깥의 일이야 어떻게되든 상관이 없다. 철저한 무책임주의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정치적 무관심은 또 다른 요인 하나를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정치의 미궁화가 그것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이름의 국회의원 후보만 놓고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은 국민의 신임과 기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정치의 막후에서 결정된다.
그 「막후」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환멸과 악취와 구토를 자아내게 한다. 더구나 국민의 심리적인 갈등을 해소시켜주는 야당에 대한 배신감은 무엇으로도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는 「우리」의 일이기보다는 철저하게 「그 사람들의 일」로 멀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치 무관심은 정적인 고요함이 아니라, 동적인 무력감이라 할 수도 있다. 「동적」이란 말은 우리 마음속엔 초조와 울분의 감정이 축적되어 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정치 무관심의 결과는 무엇인가. 정상배의 난무와 정치 타락을 유도할 뿐이다. 우리의 이 정치적 무력감에서 회복되는 길은 무엇인가. 역으로 정치에 대한 철저한 관심의 표시 이외엔 없다. 그러기엔 지금도 늦지 않다. 다가오고 있는 총선이 바로 그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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