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의 역사(1)-텍사스 레인저스(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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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명의 감독이 시즌 중에 지휘봉을 잡았던 1977 시즌에 레인저스는 창단 이후 최고의 성적인 94승 68패를 기록하였다.하지만 이 해엔 조지 브렛,알 코웬스,할 맥레이,데니스 레오나르드 등이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기세가 너무나도 거세었기 때문에 레인저스는 지구 2위에 만족해야 했다.로열스는 102승(60패)을 기록하며 양키스(100승 62패)를 제치고 리그 최다승을 기록한 팀이 되었다.

1977년 이후에도 레인저스는 안정된 전력을 보유하긴 했지만 지구 우승은 아직도 먼 여정에 불과했다.그러던 레인저스에게 다시 한 번 암흑의 시절이 돌아왔다.1977년부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창단으로 인해서 아메리칸리그 각 지구는 7개 팀씩 형성되었는데 레인저스는 1984 시즌과 1985 시즌 동안 연속해서 지구 7위를 기록했던 것이다.

강팀으로의 부상을 시도하고 있던 레인저스에게 이는 크나큰 시련이었다.특히 1985년에 레인저스는 지구 6위 매리너스와의 게임차가 무려 11.5경기에 이르렀을 정도로 참담한 시즌을 보냈다.레인저스는 이런 난국을 타개하고자 1985년 시즌 초반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새로운 감독으로 재임시키며 전력 강화를 모색했다.1986년 발렌타인은 레인저스의 성적을 끌어올렸지만 에인절스에게 지구 1위를 넘겨주며 포스트시즌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1989년부터 레인저스에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여전히 지구 4위에 머물렀지만 1988년 12월 8일 41세의 놀란 라이언이 레인저스와 계약을 함으로써 최고의 투수가 그들의 팀에서 뛰게 되었던 것이다.

1988년까지 4775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 있던 라이언은 역사상 최초의 5천 탈삼진 고지까지 225개의 탈삼진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그리고 1989년 8월 23일 라이언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리키 핸더슨을 상대로 5천 탈삼진을 작성하며 탈삼진 역사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레인저스와 함께 했다.강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레인저스에게 있어 이는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에도 라이언의 위업 달성은 계속되었다.

1990년 6월 12일,라이언은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5 대 0의 승리를 거두며 자신의 생애 통산 6번째 노히트 경기(무안타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또한 라이언은 8월 1일에는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11 대 3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자신의 생애 통산 300번째 승리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1년 5월 2일,라이언은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홈구장인 알링턴 구장으로 불러들여 3 대 0의 승리를 거두며 생애 통산 7번째이자 자신의 마지막 노히트 경기를 작성했다.7번의 노히트 경기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며 만 44세 3개월 1일이 되던 날에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기록한 노히트는 라이언을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노히트 경기를 달성한 선수로 남게 하였다.

레인저스는 이후에도 타이틀 수상에서 계속적인 경사를 맞이하였다.1991년 훌리오 프랑코는 .341의 타율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올랐으며 1년 전인 1990년에는 올스타전 MVP에도 선정되었는데 레인저스 선수로서 타격왕과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던 선수는 프랑코가 역사상 유일했다.

1992년에는 레인저스에게 또 한 명의 홈런왕이 탄생했다.4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생애 통산 처음으로 홈런왕에 오른 후안 곤살레스는 1970년 44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프랭크 하워드 이후 레인저스 선수로서 홈런왕에 오른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곤살레스는 이듬해에도 4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리그 홈런왕을 차지하였다.

1994년 레인저스는 사상 처음으로 지구 1위를 차지하였다.하지만 시즌 마지막에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됨으로써 레인저스는 포스트시즌에는 진출할 수 없었다.레인저스는 1994시즌에 비록 파업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52승 62패를 기록하며 지구 1위를 차지,현재까지 유일하게 5할이 못되는 승률을 올리고도 지구 1위를 차지한 팀으로 남게 되는 진기록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나며 레인저스 역사에 있어 가장 감격적인 시즌이 찾아왔다.1996년 레인저스는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기 때문이다.레인저스는 시즌 막판 시애틀 매리너스의 강력한 도전을 뿌리치며 두 번째 지구 우승을 차지하였다.

딘 팔머(38홈런,107타점),케빈 엘스터(24홈런,99타점),러스티 그리어(18홈런,100타점),후안 곤살레스(47홈런,144타점) 등이 타선을 주도했고, 마운드에서는 켄 힐(16승 10패),로저 파브릭(15승 8패),바비 위트(16승 12패),대런 올리버(14승 6패),케빈 그로스(11승 8패) 등 선발 투수 5명이 모두 10승을 넘었을 정도로 막강 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첫 포스트시즌에 대한 부담감은 지우기가 힘들었다.그리고 하필이면 디비전 시리즈 상대가 당시까지 월드시리즈 22회 우승의 최강 뉴욕 양키스라는 게 레인저스에겐 불운이었다.

비록 당시 양키스는 1978년을 끝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며 기나긴 암흑기를 거쳤던 팀이었지만 티노 마르티네스(25홈런,117타점),버니 윌리엄스(29홈런,102타점),폴 오닐(19홈런,91타점)이 버티는 중심타선과 앤디 페티트(21승 8패),지미 키(12승 11패),케니 로저스(12승 8패),드와이트 구든(11승 7패)으로 이어지는 선발진,그리고 시즌 43세이브의 철벽 마무리 존 웨틀랜드와 제프 넬슨,마리아노 리베라,밥 위크먼의 중간계투진은 레인저스에게 너무나도 버거운 상대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길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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