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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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곧은 말을 했다 하여 궁형을 받은 사마천은 「사기」를 쓰기로 결심하고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다. 「사기」가 단순한 사서이상으로 후세사람들을 감동 케하는 것도 이런데 까닭이 있는 것이다.
특히 백이열전 속에는 천도가 어디 있느냐고 비통한 절규가 들리기도 한다. 어질기 이를데 없던 백이 숙제는 굶어죽고 말았다.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였던 안회도 가난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 하늘은 착한 사람을 돕는다더니 하늘은 도시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가 하면 천하의 대악당으로 이름높던 도척은 양민을 학살하기를 밥먹듯하고 온갖 악덕을 다했다. 그런 그는 오히려 황제도 부럽지 않은 호사 속에서 천수를 다할 수 있던게 아닌가. 도대체 천도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하늘을 원망하는 사마천에게 우리는 다시없는 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사마천의 시대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도척과 같은 악당은 오히려 뻔뻔스레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역세가였던 장자는 공자와 도척과의 대담을 가상했다. 여기서 도척은 미생이라는 고지식한 남자의 얘기를 한다.
연인과 만나기로 한 미생은 약속한 시간에 다리 밑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왠지 그녀는 오지 않았다. 밀물이 되어 강물은 차차 그의 발 위에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를 기다리던 그는 드디어 물에 빠져 죽었다.
『이런 놈은 물에 빠진 돼지, 조각 찬 거지나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체면에 구애돼서 소중한 목숨을 버린 놈, 정말로 살아나가는 길을 분간하지 못한 놈이다』 이렇게 도척은 말을 맺었다.
장자가 이런 우화를 무엇 때문에 꾸며냈는지는 분명치 않다. 전국시대에 살던 장자가 혹은 입에 풀칠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군자입네 하던 공자를 아니꼽게 여겼던 때문은 아닌가 여길 수도 있다.
전국시대에는 도척의 처세술이 제일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전국시대에 살던 소진은 미생을 신의에 두터운 인물로서 찬양하였다.
어느 때에나 어느 나라에나 도척과 같은 인물은 있다. 그리고 천도가 어디 있느냐 하던 사마천의 폐부를 찌르는 소리도 이따금 들린다.
그러나 요새 와서는 더욱 도척이 판을 치는 것만 같다. 상대적으로 사마천의 소리는 땅속에 기어들기만 하고-. 더욱 딱한 것은 도척일수록 할 말이 많고, 그걸 귀담아 듣는 측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게 우리네 세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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