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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모델 논쟁 <2>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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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1997년 당시 ‘마지막 홍콩 총독’을 지냈던 크리스 패튼(69) 옥스퍼드대 총장. 아시아적 가치의 특수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인물로 손꼽힌다. 총독 재임 때 홍콩의 정치 개혁을 주도했던 패튼은 G2 국가로 부상한 오늘의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복지와 자유, 정부의 투명성과 법치 등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간주하는 그의 중국 정치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중국도 한국과 대만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인의 뇌리에 홍콩의 ‘마지막 총독’으로 기억되는 크리스 패튼 옥스퍼드대 총장. 그는 “중국이야말로 북한을 빼놓고 동아시아에 마지막 남은 왕조”라며 “중국도 한국과 대만처럼 민주화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 블룸버그]

옥스퍼드 대학에서 총장(Chancellor)은 독특한 역할을 맡는다.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 대학의 행정은 부총장이 책임진다. 하지만 상징성이 크다. 총장직은 영국 왕위처럼 종신제다. 이 때문에 초당적인 이미지를 가진 신망받는 원로 정치인이 이 직책을 수행한다. 해럴드 맥밀런 전 총리와 로이젠킨스 전 내무부 장관이 이 자리를 맡았다.

 지금 이 상징적인 자리의 주인공은 크리스 패튼(Chris Patten·69) 전 홍콩 총독이다. 보수당 의장, 환경부 장관, 유럽연합 대외관계담당 집행위원 등을 지낸 그는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공영 방송 BBC 이사장이기도 하다.

 세계인의 뇌리에 그는 홍콩의 ‘마지막 총독’으로 기억된다. 사람들은 1997년 60여 개 국가에 생중계된 홍콩 반환식에서 복받친 감정을 억누르느라 눈이 붉게 충혈된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천안문 광장에서 홍콩 반환을 환호하는 베이징 시민들과 패튼 총독이 홍콩 퀸스피어에서 왕실 전용보트 브리태니아호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은 대조를 이뤘다.

 총독 재임 시 그는 자주 홍콩의 거리를 활보하며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가 시행한 ‘민주적 개혁’은 중국 정부와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패튼 총독을 “영국에서 온 창녀” “간사한 뱀” “몇 천년 동안 천벌을 받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1994년 ‘포린어페어스’에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기고를 했다. 중국과 베트남·대만·한국 등의 문화적 특수성, 즉 ‘아시아적 가치’를 고려할 때 서구적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은 동아시아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 세계 정치인과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홍콩 총독으로서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에 기여한 패튼도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 뛰어들었다. 패튼은 아시아적 가치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패튼 총장을 지난 9월 18일 런던 중심부의 BBC 이사장실에서 인터뷰했다. BBC 이사장 집무실이라고 해서 큰 방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우선 아시아적 가치와 중국 정치모델에 대한 그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홍콩 총독의 경험을 듣기로 했다. 어떻게 마지막 홍콩 총독으로 부임하게 됐을까?

 “92년 영국 보수당 의장으로서 당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정작 저는 제 지역구에서 패했습니다. 당에서 저를 재·보선이나 상원의원으로 임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둘 다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공직은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메이저 총리가 마지막 홍콩 총독 자리를 권했을 때 바로 뛰어들었습니다.”

 홍콩행을 결정했을 때 그를 아끼는 동료 정치인들과 지인들의 눈에는 영국의 식민지 통치 뒷처리를 담당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선출직 정치인이었던 그가 별로 정치적 이득이 없어 보이는 직책을 맡았다는 것이 당시 많은 이의 평이기도 했다.

 “홍콩은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이고, 총독직을 수락하기 전에도 홍콩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홍콩은 중국 경제의 4 분의 1 정도 규모였고, 700만 명의 인구였습니다. 이런 도시의 행정을 맡을 수 있는 기회였고, 영국의 명예뿐만 아니라 홍콩 시민들의 권익을 위해 상당한 외교 능력을 요구하는 직책이었죠.”

 홍콩의 마지막 총독에게 주어진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제 임무는 중국과 영국 간 체결된 반환 공동선언 내용이 최대한 잘 실현되도록 힘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홍콩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고 홍콩의 법치와 시민적 자유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폭행·고문의 고통 어디서나 똑같아”

 홍콩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꾀하는 것은 공산당의 통치를 두려워하며 캐나다·호주·미국 등으로 엑소더스하는 홍콩 시민들을 막기 위해 중요한 일이었다. 그의 말은 계속됐다. “공동 선언에서 한 가지 풀리지 않은 문제는 홍콩 입법회 의원의 선출 방식을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중국과 협의된 경계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홍콩 시민들이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고, 민주적 의사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을 저의 임무라고 여겼습니다.”

 패튼은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정치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영·중 공동선언은 20명의 입법 지역위원만 직접 선거로 선출하고, 나머지 30석은 다양한 직종의 대표인 직능별위원들에게 돌아가게 했으며, 마지막 10석은 선거인단에 의해 뽑는다고 명시해 놓았다. 먼저 패튼은 직접 선거로 뽑히는 20명의 지역구위원을 비례대표제로 바꾸려는 공산당의 압력에 반대했다. 그리고 직능별위원을 선출하는 직업의 종류와 수를 늘렸다. 과거에는 오직 회사의 임원이나 로펌의 파트너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만 직능별위원을 선출할 수 있었지만, 그의 임기 중 치른 95년 선거는 회사의 샐러리맨, 비서, 심지어 운전 기사까지 투표를 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패튼의 정책에 대해 중국 공산당 고위 관리와 관영 언론은 식민지 지배 종식에 앞서 혼란의 씨를 뿌리려 한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천안문 사태 이후라 민감한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패튼은 홍콩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위한 일이라며 맞섰다. 패튼의 홍콩 정책에 대한 우려는 영국에서도 나왔다.

 “두 종류의 비판이 있었습니다. ‘친중파’라고 불리며 중국 외교 경험이 풍부한 영국 외교관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고수해 왔던 대중국 외교 전략을 위협하고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중국 공산당은 유일무이하게 자존심이 강하고 완고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과 주장을 반대하면 그날로 영·중 관계는 끝나고 외교적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92년부터 97년까지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이익을 대변했지만 영국에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업인이 중국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면 중국과의 무역이 끊길 것이고, 중국에 있는 영국 기업들이 망할 것이며, 홍콩의 경제까지 위협할 것이라고 저를 말렸습니다. 진실은 어떻습니까? 제가 홍콩을 이끄는 5년 동안 홍콩 경제는 고속 성장했죠.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매년 세금을 깎고, 시민을 위한 정부 지출을 늘렸습니다. 외환 보유액도 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고 국제공항을 지었고, 도로와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만들었습니다. 92년과 97년 사이 영·중 무역량은 두 배로 늘었습니다. 중국과 정치적 충돌을 하는 것이 영국과 홍콩의 경제에 해가 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패튼의 홍콩 총독 재임 시절 대중 외교는 중국과 외교를 하려면 무조건 중국의 구미에 맞춰야 한다는 일반적인 시각을 뒤집었다. 그는 퇴임 후 마지막 총독 시절의 회고록을 루퍼드 머독 소유의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로 계약을 했는데, 머독이 책의 내용을 보고 자신의 중국 사업이 타격을 받을까 봐 뒤늦게 계약을 파기시켰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다시 조명되는 20년 전의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열정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선, 저는 정치적 견해를 표출했거나 데모를 한다는 이유로 폭행이나 고문을 당할 때 느끼는 고통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고 봅니다. 정부가 시민들의 복지와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서양의 가치도, 동양의 가치도 아닙니다. 둘째로, 정부의 투명성은 서구적 가치가 아닙니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 아마르티아센이 지적하는 것처럼 유럽이 절대 왕정을 하고 있을 때 인도는 훨씬 더 투명하고 민주적인 통치 형태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적 가치로 아시아를 묶는 것은 황당합니다. 한국을 보세요.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민주적 지도자들과 시민들 덕분에 활력 있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한국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북한에서는 석기시대에나 볼 수 있는 전체주의가 자리 잡았죠. 인도네시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민주주의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는 또 다른 종류의 민주주의가 있고, 싱가포르에서는 중앙집권적인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습니다.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이어 중국 정치모델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를 물었다.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그의 견해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의 연장선에서 이해됐다. “이제 중국이야말로 북한을 빼놓고 동아시아에 마지막 남은 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인가요? 공산주의는 어떻게 정의하죠? 중국은 지난 30년간 엄청난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중국은 60년 전보다 훨씬 더 정치적으로 개방되고 관용적인 사회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중국 모델을 굳이 설명하자면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레닌주의적 정치체제가 특이하게 혼합된 모델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얼마 동안 경제적 개방을 하고 정치적인 통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현재 중국에 리콴유 총리가 말한 아시아적 가치, 즉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면서, 개인보다는 사회를 우선하는 유교적 가치의 문화가 어디에 있나요? 상하이에 큰 쇼핑몰에 가서 유교적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까? 제가 살아가면서 계속 놀라는 것은 이른바 유교·이슬람교·기독교의 본질적 가치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세 종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지요.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의 충돌은 과장된 시니리오입니다.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독재하에서 억압받는 시민들이 자신의 소득을 어디에 소비할까라는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사회가 어떤 식으로 작동돼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특정한 민주적 정치 모델이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정부의 투명성, 법치, 무능한 정부를 자기 손으로 교체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정치적 욕구를 투표를 통해 표출할 수 있는 권리 등은 지구상 어떤 사회나 똑같이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만 ‘민주화 예외’ 케이스 될 수 없어

지난해 10월 옥스퍼드 유니언에 참석한 패튼 총장과 악수하고 있는 이승윤 대학생 객원기자.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9월 20일 ‘중국 공산당은 얼마 동안 더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냈다. 중국이 경제성장 이후 민주화가 뒤따른다는 법칙의 예외적 케이스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진단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 중국의 1인당 소득은 9200달러 정도인데 이는 대만과 한국이 민주화됐을 때의 소득 수준보다 낮다. 한국이 민주화되던 1980년대 후반 1인당 소득은 1만2000 달러 정도였고, 대만의 1인당 소득은 1만4500달러 정도였다.

 패튼은 한국과 대만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도 경제성장 이후 민주화의 바람을 겪을 것으로 점쳤다. “저는 중국도 한국과 대만처럼 민주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중국이 갑자기 다당제 민주주의로 탈바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중국이 세계의 많은 국가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4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다른 5분의 1에만 적용이 되지 않을까요?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는 이런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개혁파는 정부가 경제에서 손을 떼지 않는 이상, 공기업들이 민영화되지 않는 이상, 사기업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이상, 중국 경제가 덜 빠르게 성장할 것이고, 더 적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정부가 경제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 공산당이 국가에 대한 주도권을 잃을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에 주어진 과제는 사회의 대혼란을 피하면서 이 두 개의 과제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패튼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의 걱정은 경제성장이 지속돼 한국과 대만이 민주화됐을 때의 개인 소득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당의 정치적 정당성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줬던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것이다. 이미 많은 경제학자는 국영기업 중심으로 수출해 돌아가는 중국 경제의 성장이 더뎌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성장률은 최근 13년 동안 최하를 기록했다. 또 패튼은 중국의 빈부격차와 부패를 지적했다. 부의 대부분이 소수의 재계와 정계 엘리트의 손에 집중돼 있다. 소득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 공산당의 정치적 정당성을 제공해준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면 시민들의 큰 불만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패튼과 달리 ‘중국의 소로스’로 불리는 에릭 리(Eric Li·중국명 李世默·45) 청웨이(成爲) 캐피털 대표는 중국 정치의 특수성을 적극 옹호한 바 있다(본지 8월 17일자 Saturday 14, 15면). 테드(Ted) 강연에서 인기를 끌었던 에릭 리는 “중국 정치 모델을 요약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융통성,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정치적 정당성”이라고 주장했다. 패튼은 중국이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메리토크라시 사회라고 보는 데 반대했다.

 “물론 수천만 명이 죽었던 50년대, 60년대에 반해 지난 30년의 중국 공산당 실적이 훨씬 낫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중국이 출신과 재력이 아니라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메리토크라시적 사회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선 계층 간 유동성을 봅시다. 엄청난 인구의 중국 국민이 절대 빈곤을 헤쳐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지표는 빈부격차가 오히려 심화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보다 빈부격차를 측정하는 지니 지수가 높습니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보다도 높죠. 그리고 현재 목격되고 있는 태자당의 부상은 어떻게 설명하죠? 중국의 정치모델이 최근 20년, 30년간 그전보다 성공적이었다고, 다른 국가들이 중국 정치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아마 전혀 없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높은 지지율을 예를 들며 정치적 정당성을 옹호했던 에릭 리의 주장에 패튼은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중국 국민이 실제로 중국 정부를 옹호하는지 누가 압니까? 만약 자신이 있으면 왜 투표권을 안 줄까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이 과거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를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패튼은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대만·싱가포르·중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경제성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제성장이 권위주의적 정치 시스템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틀립니다. 위의 나라들을 자세히 보세요. 첫째로는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성장과 강한 수출 실적입니다. 물론 시장경제가 돌아가기 위한 기본적 경제받침을 국가가 강하게 장려했죠. 둘째로는 교육과 의료에 대한 투자입니다. 특히 공통적으로 문맹률을 낮추는 노력을 했습니다. 기자와 야당 정치인을 공안이 폭행하는 것과 GDP 성장률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그는 포린폴리시지의 기고문(2003년 9월)에서도 “과연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고 야당 정치인들을 고문하고 잡아들이는 것이 기적적 경제성장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라고 되물은 바 있다.

 한국에 대한 견해도 물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높이 평가했다. 패튼은 2002년 영국 왕립국제관계연구소에서도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대한 기여, 아시아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 남북화해정책 실행 등 세 가지 이유로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라고 말한 바 있다. 패튼 총독과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서 같은 편이었다. 리콴유 총리에 대항해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일, 또 부시 행정부와 대립하며 유럽연합 외교담당집행위원으로서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주장했던 과정에서 김 대통령과 강한 유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홍콩에서의 개혁을 통해 중국인의 민주적 열망을 확인했던 그는 본토의 중국인들도 같은 열망을 가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그는 거침없이 아시아적 가치와 ‘중국적 가치’를 반박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했다. 중국의 민주화를 예상하는 것은 전 세계 정치학자들 앞에 놓인 가장 큰 질문일 것이다. 패튼은 이렇게 답했다. “민주주의를 예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거의 항상 바람직합니다(Democracy is seldom predictable, but it is almost always desirable).”

런던=이승윤 대학생 객원기자

크리스 패튼(69)

● 1944 랭커셔 출생. 옥스퍼드대 졸업(역사학)
● 1979~92 영국 바스 지역구 의원
● 1989~90 환경부 장관
● 1990~92 보수당 의장
● 1992~97 홍콩 마지막 총독
● 1999~2004 유럽연합 대외관계담당 집행위원
● 2003~현재 옥스퍼드대 총장
● 2011~현재 BBC 이사장

◆이승윤씨는 지난해 동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자치기구인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에 선출됐다(본지 3월 16일자 22, 23면). 중앙일보 해외 대학생 객원기자로서 옥스퍼드 유니언에 초청된 저명인사를 인터뷰해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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