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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인의 실상과 허상|염무웅씨 『한국 문인의 생태와 병리』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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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학평론가 염무웅씨가 「월간중앙」5월호에 『한국 문인의 생태와 병리』 라는 제목의 특별조사 「리포트」를 발표했다. 자료조사에 2개월 이상이 소요되었다는 이 「리포트」는 요즘의 문단 활동이 비교적 침체해 있는데다가 한국 문인의 생태가 사회학적 방법에 의해 분석된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꽤 주목을 끌고있다. 염씨는 이 「리포트」에서 문인들의 연령별, 분야별 분포상황, 이들의 의식구조, 원고료와 생계와의 함수관계…를 통해 한국 문인 및 문단의 실상과 허상을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이 「리포트」에 의하면 한인의 문인 수는 9백75명(70년 12월10일 현재). 그러나 이 숫자에 유명무명의 동인지를 통해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당수의 문인들이 제외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한국 문인의 총 숫자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9백75명을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 시인이 4백74명으로 으뜸이고 그 다음이 소설가 2백42명, 아동문학가 79명, 평론가 76명, 시조시인 57명, 극작가 36명, 「시나리오」작가 11명의 순. 문인들이 전국에 산재해있으므로 문인전체에 대한 지역별 및 연령별 분포 상황을 캐기는 어렵지만 염씨가 임의 선정한 4백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연령별로는 30대가 가장 많아 39%, 40대가 33%로 그 다음, 그리고 50대, 20대, 60대가 각각 14%, 8%, 6%의 순서다. 지역별로는 서울에만 약 70%의 문인들이 밀집해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경로를 밟아 문단에 「데뷔」했을까. 역시 염씨가 임의 선정한 4백93명의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중 3백1명(61%)이 추천·현상문예 등 잡지를 통해, 94명(19%)이 신춘문예 등 신문은 통해, 98명(20%)이 기타의 방법으로 「데뷔」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타의 방법이란 단행본이나 동인지를 통하는 것. 따라서 한국 문인의 대부분은 잡지와 신문을 통해서 빛을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들을 「데뷔」연령별로 분류하면 25∼29세가 38%, 20∼24세가 29%로서 20대에 문단에 진출하는 사람이 70%를 육박하고 있다.
문인들의 문단 활동과 그들 자신의 생계와의 함수관계에 들어가 염씨는 역시 문학평론가 조연현씨의 "한국 문학의 사회학적 연구"(예술 논문집 7·8집)를 인용하면서 한국문인들의 대부분이 작품 발표의 충분한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고료 수입은 생계에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고료 인세 등 문단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수입이 총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문인은 전체 문인 가운데서 단 7명밖에 안 된다는 것이며 50% 이상이 2백11명, 30% 이하가 15명, 10% 이하가 29명, 그 밖의 나머지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염씨는 몇 가지 통계로서 지금 우리 문단에서 글쓰는 일로 최소한의 생계비나 마련할 수 있는 문인은 전체 문인의 3% 정도에 해당하는 30여 명 뿐이라고 밝히고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인들은 작품 창작 이외의 직업에 생활을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 염씨는 다시 조씨의 통계를 인용하여 조사대상자 2백30명 가운데 44%에 달하는 1백1명이 대학·중·고교 등의 교직자이며 15명이 언론기관에, 9명이 공무원으로 종사하고 있고 이밖에 무직으로 표현한 여류들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봉급 생활을 하고있다고 했다.
글쓰는 일이 직업이 되지 못한다는 현상은 원고로 인상 요구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 3월에도 「펜·클럽」은 「원고료 현실화 건의문」을 각 계에 발송했는데 이에 의하면 해방 전 출신작가는 시 1편에 8천 원, 산문 1장에 8백 원이고 해방 후 출신작가는 시 1편에 5천 원, 산문 1장에 5백 원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시의 경우 유명무명의 동인지를 합해야 1년 동안 발표되는 작품 수가 9백여 편인데 그중 원고료를 받고 20편 이상 발표하는 시인은 고작 10명 정도. 고료가 문예지가 편 당 1, 2천 원, 종합지가 3천 원인 것을 감안한다면 시를 써서 1년 동안 5만원 내외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10명뿐이라는 계산이다. 시보다는 다소 낫다는 소설의 경우도 월평균 4만원 이상의 고료 수입을 올리는 작가는 고작 30명 내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인들의 이러한 어두운 면을 파헤치면서 염씨는 『어떠한 극한적 상황 밑에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사회에의 꿈과 훌륭한 문학에의 가능성은 결코 부정되거나 체념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단이란 것을 살펴볼 때 과연 모든 꿈이 잊혀지고 모든 가능성이 추방되지 않았나 하는 비감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온갖 시끄러운 잡음을 내고 있는 문단의 병리적 생태를 개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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