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의 송사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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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배영호 법무부 장관은 16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률구조를 해주기 위해 법률구조협회를 만들기로 했으며, 오는 10월부터 첫 사업을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다.
법무부가 마련한 가칭 「대한법률구조협회」의 설립요강에 따르면 중앙에 9명으로 조직하는 법률구조 심사위원회를 두어 당사자의 법률구조 신청에 대해 최종적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하며, 지방법원 소재지에 설치되는 대한법률구조협회 지부에서 법률구조 키로 결정된 사건에 대해서는 법률구조위원 중의 변호사 가운데서 수임 변호사를 결정, 소송 수행을 맡게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의 이 안은 지난번 박 대통령이 법무부 초도 순시 때 연구를 지시한 것으로, 그 동안 재야법조계와 학계 등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들어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빈곤으로 인해 스스로 소송 수행을 하기 어려운 자로서 인권 옹호의 취지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민·형사·행정사건에 법률구조를 해 주는 것은 극히 필요한 일이다. 민사 소송법에도 이를 위하여 법률부조제도가 있었으나 이것이 이용되지 않아 사문화되어 오던 터에 늦게나마 법률구조의 필요성을 느껴 법률구조협회를 두게 되었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사실이지,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빈곤 자를 위한 소송구조제도가 활용되고 있는데도 유독 우리 나라에서만이 제도가 빛을 보지 못하여 민사소송에 있어서는 유전이면 승소요, 무전이면 패소라는 반갑지 않은 격언까지 나오게 됐었던 것이다.
또 형사소송에 있어서도 국선 변호 제도가 있기는 하나 그것이 사실상 유명무실화하고만 것은 주지된 바와 같다. 이러한 병폐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 나라에도 몇몇 사설 법률구조위원회가 있었으나 그 활동이 너무도 미미했던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 이유는 인원부족과 예산부족 때문이었다고 하겠는바 정부가 인권 옹호를 위하여 법률구조협회를 만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법무부에 의하면 대한법률구조협회의 운영기금은 독지가의 희사와 국고 보조에 의할 것이라 한다. 또 법률구조 심사위원은 검사·판사·변호사 중에서 위촉될 것이라 하며, 수임 변호사는 법률구조 위원 중의 변호사 가운데서 소송 수행을 맡기기로 했다 한다. 수임 변호사는 사건 의뢰 자로부터 어떠한 명목으로도 금품을 받을 수 없으며 소송이 끝난 뒤 구조를 받은 당사자 또는 승소한 경우에는 집행된 재산에서 소송비용을 분할 상환케 하거나, 당사자의 자력여하에 따라서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무부의 입안은 또 어느 면에서는 지나치게 관료적이라는 평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한가지 실례를 들자면 이 기구의 운영모체를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5명,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는 5명, 대한변협이 추천하는 5명, 문교부 장관이 추천하는 2명 등으로써 구성되는 이사회에 맡기려하고 있는 점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견해에 의하면 법률구조협회는 국가의 보조를 받는 젊은 변호사들의 합동법률사무소에 법률구조를 위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또 법률을 개정해서까지 변호사로서의 피 선임권을 인정하고 있는 사법연수원의 연수생들을 수임 변호사로 활용하는 방법도 강구해주기 바란다.
법무부는 법률구조협회를 구성하는데 외국의 예를 보다 많이 연구하고 중지를 모아 최선의 법률구조위원회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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