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로 본 60년대의 추세 (가) 전국 개관|땅값의 신화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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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0년대에 표면화한 땅값 상승의 파장은 첫 「스타트」로 경남 울산에서「붐」을 이룬 다음 후반의 경부·경인 및 호남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북상, 수원·인천 등을 휩쓸고 서울의 강남 투기로까지 번져갔다.
건설부 조사에 따르면 제1차 5개년 계획의 핵 지역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울산에서는 상가·주택가는 물론 논·밭 할 것 없이 땅값이 일제히 치솟아 60년 이후 66년까지 연평균 43·8%의 상승을 기록했다.
이러한 울산 지방의 땅값 상승은 인접한 대도시 부산의 땅값까지 부채질했고 서울 지방도 수도권 확장 계획에 편승, 이른바 성장 지역 및 서울에 인접한 인천시·시흥군 등의 땅값이 현저히 상승했다.
즉 60년에서 66년까지 서울의 성장 지역으로 지목됐던 성동구가 기성 지역에 비해 31·3「포인트」, 성북구 31·7 「포인트」, 서대문구 35·1「포인트」, 영등포구는 43·5「포인트」가 더 올라 전체적으로는 기성 지역을 평균 32·1 「포인트」나 앞질렀으며 인천시 (연평균 상승률 35%)는 12「포인트」의 상승률 차이를 나타냈다.
이밖에 시흥군은 6년 동안 상가가 연평균 88%, 주택 지대 58%, 밭은 11%가 올라 지역 연평균 52%, 의정부는 48%의 상승률을 각각 보였다. 한편 66년까지 연율 27%의 상승을 기록한 전국 평균 땅값은 67년10월부터 68년9월까지의 1년 동안은 상승률이 7·8%로 급강하 (국세청 조사) 했으나 68년 하반기부터는 다시 고삐를 당겨 69년9월까지 1년간에 다시 13%의 상승을 기록, 전년동기비 약 배가 올랐는데 이 같은 추세는 고속도로 개통과 남 서울 개발 계획 등으로 부동산 투자 「붐」 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땅값이 다시 서서히 오르기 시작, 68년 초의 말죽거리 일대 땅값은 1년 전의 평당 2천5백원 선에서 5천원, 신월동 및 신정동은 5백 내지 6백원에서 1천5백원대로 오름세를 나타냈다. 강남 지방은 69년 말부터 본격적인 부동산 투기 양화하여 69년10월 이후 70년1월까지의 불과 4개월 동안에 최고 5배까지나 폭등했는데 이때의 이 지역 땅값은 평당 최고 9천원, 최저 2천1백원 (국세청 조사).
이밖에도 68년10월 이후 69년9월까지 전국적으로 두드러지게 땅값이 오른 지역을 보면 전북 전주시 다가동이 5배가 오른 것을 비롯, 부산시 범일 2동 1·1배,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수진리 1배 (이상 밭), 충북 제천읍 중앙로 2가 4·5배, 충주시 용산동 1·5배 (이상 논), 경북 영일군 조천면 용덕 일대 4배, 전주시 송천동이 1·5배 (이상 대지) 등이다.
특히 이 기간 (68년10월∼69년9월) 중 임야 값은 전례 없이 급등했는데 경북 대구시 남산동의 임야가 1년 동안 25배나 폭등했고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삼천리는 20배,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임야는 1·5배, 부산 동래구 안악동은 1배 그리고 충남 대덕군 북면 석봉리가 66%나 상승했다.
이러한 68년 하반기이후의 땅값 상승 추세는 70년도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어 국세청의 「부동산 시가 표준액」조정 내용에 의하면 70년 하반기 (7월∼12월) 중 전국의 대지 값이 6%, 임야는 9%가 상승했다.
이 6개월 동안에는 서울 지방의 땅값 오름세가 두드러져 평균 7·3%를 나타냈고 다음이 경기도의 4%, 부산·경남 지방은 0·9%가 올랐으나 기타 지방은 보합세였다.
특수 지역으로는 서울 성동구 논현동 및 역삼동, 경북 경산군 안심면 동호리, 경북 포항시 상원동과 여천동은 각각 50%와 상승률을 보였다.
한편 70년 말 현재 전국의 땅값 (감정원 조사)을 보면 상가 지대 평균은 서울의 평당 38만6천원이 가장 높고 다음이 부산 24만5천원, 경북·제주 6만원 그리고 기타 지역은 2만5천원 내지 3만원 선이며 충북이 가장 낮은 1만4천원으로 나타났다. 주택 지대는 서울이 8만6천원 (상가 및 주택 면적을 고려치 않은 단순 산술 평균), 부산 4만8천4백원, 제주도 5천3백96원, 경기·전남 및 경남북은 2천원, 그리고 기타 지방은 1천원 안팎이다.
즉 서울·부산의 땅값과 지방도의 땅값은 상가 지대에선 약 10 대 1의 격차이나 주택 지대는 20 내지 40대 1로 격차가 더욱 심한 셈이다.
한편 60년대 후반에 땅값이 두드러지게 오른 지역을 농협의 전국 토지 시가 조사에서 보면 68년 이후 70년9월까지 약 3년 동안 강원도 원주시의 밭이 평당 2백10원에서 2천1백원으로 10배가 올랐으며 경북 영주군의 공장 지대는 8배, 경기도 안성군 및 전북 완주군의 상업지대는 각각 6배, 경남 양산군 상업 지대는 5배의 상승을 나타냈다.
그러나 지역별 특수 사정은 땅값을 내리는 요인도 된다. 경북의 금능군은 고속도로가 한복판을 지나 토지의 효용도를 낮춤으로써 68년에 평당 (상업 지대) 1천3백20원 하던 것이 70년9월에는 1천2백60원으로, 강원도의 양구·속초 등은 소양강 「댐」 공사로 교통이 더 불편하게 되어 점차 신흥 개발지에 밀림으로써 땅값이 하락, 같은 기간 중 양구가 23%, 속초는 17%가 떨어졌다 (농협 조사).
이 밖에도 국세청 조사에 의하면 주한미군 철수에 따라 기지촌 땅값도 점차 떨어지는 경향이다.
즉 70년7월부터 70년 말까지 6개월 동안 양주군 동두천 읍 땅값은 53%나 폭락했고 철원읍 월하리와 화지리는 각각 9%, 15%가 내렸으며 금화 읍도 10%의 하락세를 보였다.

<김한도·김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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