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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다시 보기 … 그 빛과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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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여 년 방치됐다가 내년 4월 중순 복합문화예술공간인 ‘KT&G 상상마당 춘천’으로 되살아나는 춘천어린이회관. 건축가 김수근의 1980년 작품으로 날개 모습의 좌우 대칭 형태를 보여 일명 ‘나비’ 건물로 불린다. 고인이 즐겨 쓰던 적벽돌과 기본 설계를 그대로 복원했다. [사진작가 염중호]
김수근

가을 햇살을 받은 벽돌이 단풍보다 더 붉게 물들어 반짝인다. 좌우 대칭으로 어슷어슷 나지막하게 늘어선 건물은 별명처럼 ‘나비’ 한 마리가 날개짓해 날아오를 듯 가뿐하다.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 223-2 춘천어린이회관. 건축가 김수근(1931~86)이 설계해 1980년 5월 준공한 그의 말기 작품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낮고 자그마한 방들이 오종종하게 모여선 건물은 순하고 여리다.

 한동안 폐허가 돼 비어 있던 이 공간이 20여 년 만에 되살아난다. KT&G가 강원도와 30년 보장의 계약을 체결하고 사들여 서울 홍익대 앞 ‘상상마당’ 같은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 적벽돌의 원래 모습을 최대한 살리면서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활동하는 새로운 개념의 문화시설로 내년 4월 중순 재개관한다.

 김일권 상상마당 시각예술팀장은 “가장 큰 공간인 ‘소양홀’을 200석 규모의 인디밴드 전용 공연장으로 만들고 사진 갤러리, 디자인 숍, 카페 등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갖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바로 이웃해 있는 지상 4층, 지하 1층짜리 강원체육회관을 레지던시 호텔로 재개발해 젊은 음악가나 미술가들이 묵으며 활동할 수 있게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재탄생의 모든 과정은 사진작가 염중호씨와 이상규씨가 기록해 보존한다.

 춘천어린이회관은 행복한 복원의 수순을 밟고 있는 편이다. 건축가 김수근이 남긴 건축물 보존 문제가 다양한 방향에서 논란거리로 터져 나오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남아있는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 한국관은 자칫 철거 위기에 몰렸다. 김수근문화재단(이사장 박기태)이 주한 캐나다 대사관 측과 보존 방법을 의논하고 있지만 “이 안건은 주 캐나다 한국 대사관에서 우선 제기해야한다”는 답을 들었다.

김수근 건축세계의 종합체이자 한국 현대건축의 최대 성과물로 꼽히는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 최근 근대문화유산 신청을 냈다. [사진 김수근문화재단]

 청주시 중앙동 학천탕 건물은 김수근이 생전에 공간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마지막으로 맡은 작품이어서 더 의미 있다. 현재 청주시가 경매에 나온 학천탕 건물을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주목된다.

 가장 핵심 건물은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이다. 지난 1월 모기업인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 이상림)가 부도를 맞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매각 절차를 밟는 운명에 처했다. 김수근의 대표작이자 그의 건축세계가 함축된 이 건물을 공공자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몇 달 사이 인수 의사를 밝혔던 서울문화재단을 비롯한 몇 개 공기업과 사기업이 다 손을 턴 뒤 ‘공간’은 공매에 나와 있는 상태다.

 김수근문화재단은 문화재청과 서울시에 근대문화유산 신청을 해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박기태 이사장은 “서울시가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을 사들여 건축도서관·박물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용단을 내려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수근을 사사한 건축가 승효상씨는 “김수근이 남긴 건축물의 미래는 바로 우리 현대건축사의 미래이기에 관심 있는 분들의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부탁했다.

춘천=정재숙 문화전문기자

◆김수근=1931년 함북 청진에서 태어나 86년 서울에서 타계했다.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일본으로 밀항해 도쿄예술대 건축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61년 김수근 설계사무소를 연 뒤 ‘자유센터’ ‘타워호텔’ ‘한국일보 사옥’ ‘샘터사옥’ ‘한계령 휴게소’ 등 200여 건축물을 설계했다. 66년 한국 최초의 종합예술잡지 ‘공간’을 창간했고 공간사랑·공간화랑을 통해 한국의 문화운동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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