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문화 연구소 학술 발표회서(하)|사회 과학 연구의 변천과 과제|조기준 <고려대 교수·경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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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민족의 사회 경제사가 근대 서구에서 발달한 사회 과학 방법론에 따라 연구·서술된 것은 반세기 이래의 일이다.
한국 사회 경제사는 이 시기에 개척되었고, 그 연구 결과는 국내외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왔다.
개척기의 한국 사회 경제사의 연구는 ①일본 관 학자에 의해 주장된 식민지 사관 ②마르크스 등의 유물 사관 ③「위트포겔」등의 동양 사회 정체론으로 대표된다.
식민지 사관은 일본의 한국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며 일본 관 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이 사관 밑에서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사를 서술해 왔다.
20세기초에 식민 사관을 최초로 도입한 일인 복전덕삼은 「칼·람프레히트」의 인류 경제사회에 대한 발전 단계 즉 ①상징 시대 ②모형 시대 ③가설 시대 ④개인 시대 ⑤주관 시대의 5단계를 제시하면서 『한국은 자족 경제의 모형 시대에서 방황하다가 세계 진운의 대세가 이미 부패하여 공허한 모형적 사회 생활을 침염함에 이르러 끝내 붕괴되고 말았다』고 설명한다.
즉 한국에 있어서 토지를 해방해 자본화하고 국민을 해방해 진정한 개인성을 환기시키는 일은 자발적으로 이를 수행할 수 없으므로 다른 발전한 경제 조직 (일본) 에 동화해야 한다고 지론을 폈다.
그의 이런 식민지 사관은 일본의 대한 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일본 관 학자들에 계승되었다.
식민 사관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선 학자는 백남운였다, 그는 마르크 등에 의해 제창된 사관을 한국사 및 한국 경제사 연구에 도입한 최초의 학자였다.
그는 한국사에서 봉건 사회의 결여를 지적하면서 한국사 발전 단계의 저위성을 주장한 복전의 이론을 부정하고 장원 제도 하나만으로 봉건제를 규정하려는 태도를 논박했다.
그는 일인 관학자들은 물론 민족사가들 마저 「조선의 특수 사정」을 주장하는데는 다름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위트포겔의 동양 사회 정체론을 도입하여 한국 사회 경제사에 적용한 대표적 학자는 삼곡극기씨다.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은 ①역사 과정에 있어서의 계기적 발전 이론 ②아시아 적 생산 양식론에서 표명된 정체성 이론을 강조했는데 백씨가 이 발전 이론을 취했다면 삼곡씨는 정체성론을 취해 위트포겔의 자연 환경론을 가미했다고 할 수 있다.
유물 사관의 아시아 적 정체성의 특성과 위트포겔의 동양 사회 침체성론은 개척기의 한국사회 경제사 연구에 종사한 많은 학자들을 미혹시켰다. 최호진 등 민족사가에게도 정체론이 깊이 침투했다.
해방 후 박극채 이북만 전석담 제씨가 새로운 연구를 내놓았으나 이론적인 근거는 역시 유물 사관에 두었었다.
한국 사회 경제사 연구가 새로운 방향을 지향하면서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50년대 후반부터다. 연구 인구의 증가, 각종 기본 사료의 다량 복간, 각종 학회 및 연구 서클이 조직되어 토론 기회가 많아졌다는데 이유가 있었다. 미개척 분야의 구체적 사료탐색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시대에 와서 한국 사회 정체론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아울러 문화사 연구 전반에도 반성이 일고 있다. 또 새로운 방법론이 모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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