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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증거 세부사항까지 법률로 명시해 관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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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14면

최근 언론에서 검찰이 컴퓨터를 압수수색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컴퓨터가 필수불가결한 생활수단이 되고 있는 만큼 컴퓨터 내에 저장된 자료가 범죄 수사에 유용한 증거가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한국엔 형사소송법상에 디지털 증거(예를 들어 컴퓨터)로부터 출력된 서증(書證·출력물)이 원본과 동일한지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나 절차가 없다. 또한 디지털 증거가 현행법상 전문(傳聞) 증거로만 취급돼 중요한 증거물이 간접 또는 정황증거로만 채택되는 문제가 있다.

컴퓨터 법의학 선진국 미국에선

이에 반해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컴퓨터 법의학)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연방 형사소송절차규칙과 연방증거규칙에서 디지털 증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자 커뮤니케이션 프라이버시 법(ECPA), 사법절차를 위한 통신 지원법(CALEA·Communications Assistance for Law Enforcement Act) 같은 여러 법도 디지털 및 컴퓨터 통신 증거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증거규칙 제901조(a)는 ‘증거 채택은, 그 증거의 신청자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증거가, 원본과 같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할 만한 증거에 의해 성취된다’고 규정한다. 이어 901조(b)는 ‘결과물을 산출하는 데 이용하는 절차나 시스템을 기술하고 그것이 정확한 결과를 산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상세히 명기하는 식이다.

디지털 증거가 법원에서 인정받으려면 표준화된 수집·분석 절차를 갖춰야 한다. 미국에선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디지털 증거 표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증거 수집·분석이 이루어지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도 경찰청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디지털 증거 처리 표준 가이드라인’을 각기 마련해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준 절차 준수를 의무화하는 법이 없어 가이드라인을 준수했음에도 법정에서 별도로 장시간에 걸쳐 적법한 절차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선 디지털 증거가 전문 증거라 해도 증거로 인정될 수 있게 예외를 법률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고, 디지털 증거를 임의로 삭제하거나 은닉하는 행위를 민·형사상 처벌하는 것도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2007년 연방 민사소송규칙 개정을 통해 민사 소송에 적용하고 있는 미국의 ‘e-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도 주목할 만하다. e-디스커버리는 기존의 증거개시절차(discovery)에 전자문서를 포함한 제도다. 법원이 재판 당사자에게 디지털 증거 제출 명령을 하면 기한 내에 적시된 디지털 증거를 그대로 제출해야 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디지털 증거를 조작하거나 누락시키고 훼손한 혐의가 드러나면 재판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패소하게 된 것은 e-디스커버리 제도에 생소했던 삼성전자 측이 증거보존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미국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디지털 증거를 증언하는 디지털 수사관의 전문성에 따라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과학센터(NCFS) 산하 디지털포렌식자격위원회(DFCB)가 인재를 양성하고 있으며, 사설 기관에서의 교육도 활발하다.

우리나라도 요즘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대검찰청에선 ‘인재양성팀’을 통해 과학수사관들의 전문성 강화 교육을 하며 최근에는 포렌식연구소를 설립해 관련 연구와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2012년에는 민간 ‘한국포렌식학회’가 주관하는 ‘디지털포렌식전문가 검정시험’이 국가공인자격시험으로 인정됐다.

우리나라는 여느 선진국과는 달리 디지털 포렌식을 단순히 범죄 수사기법 중 하나로만 생각하고 있다. 관련 법령도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급속한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민·형사 소송의 주요 증거로 정보저장매체에 대한 중요성이 증대될 것으로 보여 디지털 포렌식의 절차 및 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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