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유권자들에게-지명관<덕성여대 교수·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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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가오는 선거를 생각 할 때 나는 69년 말 일본의 총선거에 대한 보도에서 받은 충격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자민당이 대승하고 사회당이 44석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나라 신문들은 물론 자민당이 안정세력을 확보하였으므로 한일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환영하는 조로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 신문들은 그 결과에 대하여 자못 염려하는 논조를 펴지 않을 수 없었다. 동경에서 나타난 43.65%의 기권율을 앞에 놓고 신문은 일본국민의 정치에 대한 이 무관심, 이 염증을 어떻게 할 것 인가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국민들은 『누구를 뽑을 것 인가하는 생각보다 무슨 물건을 살 것인가』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오늘 소비의 시대에 사는 우리 국민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여성 유권자들은 한번 생각해 볼만한 말이 아닐까.
잘사는 것만 바라는 대중에게 향하여 이제 선거전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지방사업을 약속하는 수표는 남발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국회의원의 국가대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회의 의원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그런 행각을 벌일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바른 투표를 행하기 위하여서는 상당한 용기와 양식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이해를 넘어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그러한 용기와 양식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것은 곧 『무엇을 살 것인가』하는 관심을 거부하고 『누구를 뽑을 것인가』하는 관심에로 자기를 전환시키는 작업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관심을 일상생활에서부터 정치로 굴절하는 것이며 가정에서 사회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나라 여성들의 생활 속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부재·사회부재의 현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곧 현대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시민생활이 결여돼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현실이 시정되지 않는 한 우리의 선거가 용기와 양식에 근거가 바른 투표로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1968년 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그곳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 이 때 미국여성들이 남성들과 더불어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누가 오늘의 미국과 세계를 위하여 보다나은 대통령이겠는가에 대하여 활발하게 논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여성들의 논평이 더 정확하고 예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미국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여가를 사회적인 관심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우리 나라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소비의 시대라는 오늘의 상황뿐만 아니라 전통에서 오는 사회와 정치에서의 여성의 소외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민주적인 시민사회를 위하여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상황임은 두말할 것 없다.
우리들의 마음을 선거나 정치에서 소외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로서 오늘의 정치 현실 전체에 대한 불만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나라의 시민이 생각하는 것처럼 덜 악한 사람을 택한다는 겸허한 양식을 가져야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덜 악하다고 평가 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여 줄 것인가.
그것은 어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성품이나 능력만이 아니라 그 개인이 다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 역사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도 여성들의 양식은 크게 사회화 되어야한다는 요청을 받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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