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고향의 집. 도쿄' 건립을 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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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일섭
서울대 명예교수

얼마 전 한국사회복지법인대표자협의회 정책자문위원장 자격으로 일본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를 2박3일간 다녀왔다. 오사카와 교토의 사회복지 고위 관리, 사회복지법인 대표 등과의 간담회와 함께 교토에 있는 ‘고향의 집’이라는 재일동포 노인들의 노인홈(요양원)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시설 설립 주체인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의 임직원들과 노인을 위한 시설복지 제도에 대한 한·일 간 차이를 논의했다. 관심을 끈 것 중 하나가 현재 운영 중인 사카이(堺)·고베(神戶)·오사카·교토 등 4개 시의 ‘고향의 집’ 설립 배경과 2014년 2월 착공 예정인 ‘고향의 집. 도쿄(東京)’의 설립 계획이었다.

 첫 시설인 ‘고향의 집. 사카이’가 설립된 계기는 30년 전인 1983년 재일동포를 위한 일간지 통일일보에 실린 기사였다. 아이치(愛知)현에서 한 재일동포 노인이 사후 13일 만에 발견됐으며, 다른 노인은 화재 속에서 구출됐다가 병원 치료 중 사망했으나 유족이 없어 유골을 복지사업소가 보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윤기 당시 공생복지재단 회장은 고독한 죽음을 앞둔 수많은 재일동포 고령자를 위해 한국인 전용 노인홈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당시 일본에서도 고독사가 사회문제였으나 재일동포 노인에 대한 시각은 달랐다. 공무원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당시 일본 유명 대학의 사회복지학 교수, 일본 기독교전도협회 회장, 목사 등 주요 인사들과 논의했지만 “좋은 일이지만 현실은…”이라며 모두 말끝을 흐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 회장은 84년 6월 일본 아사히신문의 ‘오피니언 페이지’에 ‘재일 한국인 노인홈 건설을!’이라는 제목에 ‘고국과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하고 싶다’라는 부제를 붙인 기고문을 게재, 필요성을 제창했다. 이 제안에 3만여 일본인이 후원금을 보내오고 독지가들이 뜻을 보태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산다는 오사카에 ‘고향의 집’과 주간보호센터를, 고베에 지역 주민과 재일동포가 함께 사는 ‘고향의 집. 고베’를 만들었다. 그 뒤 ‘고향의 집. 교토’가 만들어졌고 이제 ‘고향의 집. 도쿄’ 건립에 도전한다.

 도쿄에 고향의 집을 세우는 데 들어갈 건립비용은 23억 엔(약 252억7000만원)이다. 그중 8억 엔은 도쿄도가 보조하고 나머지 15억 엔은 법인이 부담할 예정인데 일부는 모금으로 충당한다. 일제시대 징병·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재일동포 1세대는 아직도 이국 땅에서 한 많은 생을 살고 있다.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는 재일동포 고령자와 일본 노인들에게 한국 김치와 일본 우메보시(매실 절임)가 있는 양로원을 건립하려고 첫 삽을 뜨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재일동포 문제에 무관심했다. 일본 정부는 과거 잘못을 반성하지 않지만 고향의 집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일본인들은 이를 속죄하려는 양심세력이다. 재일 한국인을 위한 양로원 건립에 앞장서고 있는 87세의 아베 시로(阿部志<90CE>) 가나가와(神奈川)현립 보건복지대학 명예학장은 “일본이 한국에 범한 죄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력으로 침략한 것이고 또 하나는 동화정책을 써서 이름도 글자도 못 쓰게 강요한 점”이라고 말한다.

 재일동포 고령자들은 역사의 희생자로 살아왔고 말년이 되어서도 한·일 간 틈바구니에 끼여 가슴 한 번 크게 펴지 못하고 살고 있다. 아픈 역사를 헤쳐온 재일동포 1세대에겐 노년의 안식처가 필요하다. ‘고향의 집. 도쿄’는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부디 한국에서도 ‘고향의 집. 도쿄’ 건립 취지에 많은 분이 뜻을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일섭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