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망치면 물어주겠다, 실력·책임감·정성 3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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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는 수선업계의 대표선수다. ‘수선집’ 하면 낡은 작업대와 미싱이 놓인 좁고 어두운 공간이 설핏 떠오르지만 한길사는 명품 숍들이 즐비한 청담동 거리에서도 번듯한 주차장이 마련된 빌딩에 위치해 있다. 직원도 열댓 명이 넘는다. 수백만원짜리 명품 옷을 책임지고 말끔하게 수선해 주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일종의 ‘기업형 수선집’라고도 할 수 있다. 18년간 이뤄낸 성취다. 두 가지 포인트를 눈여겨보자.

 첫째,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이다. 황인찬 대표는 양복을 만드는 ‘테일러’ 출신이다. 명동·압구정 일대에만 400여 곳의 수선집이 있지만 정작 테일러 출신이 하는 수선집은 손가락에 꼽힌다. 수선일을 한 수 아래로 보는 업계의 시선 때문이다. 황 대표가 처음 수선집을 열 때도 “왜 양복장이가 수선을 하느냐”는 동료들의 눈총을 견뎌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황 대표는 도전했고, 갈고닦은 기술력을 토대로 명품 수선을 특화했다. 사양화돼 가는 업종에서 좁은 활로를 찾아내는 안목, 그리고 그 활로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천착해 성취를 이뤄내는 끈기야말로 오늘날 강소상인이 갖춰야 할 필수 역량이 아닐까.

 둘째, ‘업의 재정의’다. 미싱으로 5분이면 끝날 바지 길이 수선에 한 시간이 걸리는 한길사의 작업 프로세스는 효율성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차별화의 관점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안이다. 한눈에 봐도 ‘남다른 수선집’이 아닌가? 즉 한길사는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일반 수선집과 철저히 차별화하기 위한 핵심 무기로 ‘전문가의 수작업’을 선택한 것이다. 이 같은 발상은 수선업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황 대표는 부지불식간에 수선업을 ‘단순 가공업’이 아니라 ‘스타일 창조업’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즉 옷에 대한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수선업의 가치를 확장했다. 그 결과 단순 가공업의 몇 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

 결국 한길사는 ‘아날로그의 힘’이다. 다소 느리고 비싸지만 실력과 정성으로 승부한다.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품질을 원하는 고객을 끌어들인다. 한길사를 보며 100년 넘게 업계에서 일가를 이룬 일본 ‘노포’들의 장인정신을 떠올려 본다.

김진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중앙일보·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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