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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 불이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간밤에는 조용히 가랑눈석인 비가 대지를 적셔 놓았다. 마치 오랜 잠 속에든 자연을 깨우려는 듯 곱게 간지럽혀 가며 비가 내렸다.
봄의 전위대가 찾아 온 이제는 누가 뭐래도 완연히 봄인가 보다. 개나리·진달래꽃도 멀지않아 피어 날 것이다.
간밤의 비는 봄소식을 알리듯 다정하게 포근히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주었다.
그리고 봄의 온갖 감미로운 연상들이 살며시 미소를 안겨주기도 했다.
비는 봄의 기상나팔과도 같다. 봄비는 우리에게 오랜 구면에서 벗어나 행동하기를 속삭인다.
그러나 봄을 노래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봄의 장소는 여인의 의상에서도 아직은 보이기 않는다.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 날씨의 변덕을 위해 두꺼운 겨울옷을 사람들은 그대로 입고 있어야만 한다. 어쩌면 봄의 화사한 미소를 반길 채비를 사람들이 미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지의 얼음이 녹은 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의 얼음이 미처 녹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봄은 자연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만 움트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 참다운 봄은 꽃피게되는 것이니 말이다.
봄은 사랑의 계절이라 한다. 그래서 사랑을 다짐하는 밸런타인의 날은 봄의 전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비가 내린 것도 까닭이 있었다고 봐야겠다.
그러나 사랑은 나누는 것, 이것은 어느 한 쪽에서나 마음의 문을 열기 전에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아득한 옛날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바벨의 탑을 만들려 했다. 사람들이 한곳에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늘로 치오르고 있는 이 탑을 불손한 것으로 여긴 신은 꾀를 하나냈다.
신은 탑을 만드는 일꾼들의 말이 서로 통하지 않게 했다. 이래서 일꾼들은 서로 다른 말들을 쓰게되어 손발이 맞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공사는 엉망이 되어 탑은 도중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각지에 흩어져 살게되었다.
그때이래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따라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됐다는 뜻도 여기에는 담겨져 있는 것이다.
아무리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리 봄을 느껴도 봄의 기쁨을 나누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봄을 알리는 비가 간밤에 조용히 내렸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봄의 기쁨을 나누도록 봄맞이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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