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후보 댁 사건의 의외의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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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씨 댁 폭발물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과 경찰은 사건 발생 15일째인 10일, 김 후보의 조카 김홍준 군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총포화약류 단속법 위반 및 폭발물 사용 (형법 제119조) 혐의로 입건, 구속했다. 검찰은 수사 경위를 발표하면서 김 군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 김 군의 자백이나 증인의 진술 외에도 물증이 10여 점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기소한 범죄 혐의자가 반드시 범죄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사법 운영상 하나의 상식에 속한다. 때문에 우리는 재판을 받기도 전에 김 군이 범인이라고 경솔히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이 15일을 두고 전력을 다해서 수사한 끝에 김 군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구속한데는 그들로서도 공소 유지에 충분한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배후의 유무를 불문하고 진범으로 지목되는 혐의자가 검거된 이상, 수사는 일단락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우리는 사건의 성질에 관해 ①자유 선거를 파괴하려는 공산 분자들의 흉계 ②정부 여당 측 과잉 충성 분자의 테러 ③국민의 동정을 끌기 위한 신민당 내부의 조작극 ④철부지의 장난 등 네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했는데, 경찰 수사 결과는 결국 이중 ④의 케이스로 판명된 것 같다. 사건 발생이 내외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검찰이 사건 수사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갖가지 의혹을 자아낼 수 있는 이 사건이 불과 15세난 어린 학생의 장난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태산명동 서일필이라는 느낌이 짙다.
그리고 김 후보 댁 폭발물 사건이 검찰이 단정한 것과 같이 15세 소년의 소행이라 한다면 이처럼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사건을 가지고, 15일씩이나 나라 안이 발칵 뒤집히듯 여야 정치인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는 것은 이번 사건의 귀추를 떠나서 다시 한번 우리의 서글픈 정치 현실에 대해 반성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신청한 구속 영장에는 범인이 『폭발물을 폭파시키면, 마치 정치적인 테러 행위가 발생한양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특히 선거를 앞두고 국민 여론을 혼란케 할 것을 결의』하고 범행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학교에 다니는 열 다섯살 철부지 학생이 이처럼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범행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서는 큰 의문이 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김 군이 이미 형사 책임을 질 연령에 달한 소년인 이상, 범죄 혐의에 대한 형사적 소추를 면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다만, 김 군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를 반드시 구속했어야 했겠느냐에 관해서는 세론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검찰은 공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 수집을 빨리 끝마치고 하루속히 구속을 해제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공화당은 『신민당은 이번 사건이 정부·여당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주장, 정국을 혼란시킨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신민당은 『김 군의 범인 단정은 강압에 의한 자백으로 조작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정면으로 상반되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 사건은 발생 직후부터 공화·신민 양당이 서로들 상대방 측에 범인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위한 설전을 벌였던 것이니, 수사 결과를 보고 위와 같은 상반된 견해가 나타났다하여 조금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성질의 사건에 정치적 잡음이 개입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을 해칠 우려가 다분히 있는 것이니 재판의 결과가 판명될 때까지, 누구도 이 사건의 발생이나 수사 과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책동은 삼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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