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학 20년…그 집성의 한계|『한국 문화사대계』완간서 드러난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학 정리의 기초 작업으로 이루어진 고대민족문화연구소 간행의 한국 문화사대계 전6권이 연초에 완간을 보았다. 10년을 걸려 30여 만장의 원고를 수록한 이 총서는 앞으로 한국학을 집성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이 되고 있으며 또 새 방향의 타개를 위해서 특히 많은 문젯점을 던져주고 있다.
학계는 한국문화사대계가 우리 손으로 이루어 놓은 최초의 분류사라는 점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철학자 박종홍 박사는『우리의 올바른 신념을 가지는 길잡이로서 갈망하던 쾌거』라 말하고 있으며, 국문학계의 원로 이희승 박사는『민족이 갖추어야 할 상식의 보고가 월뿐 아니라 자아상실의 위험에 빠지기 쉬운 시민들로 하여금 민족 주체성을 확립시키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그 업적을 평가했다.
경치·경제·과학·철학·예술·문학 등에 걸쳐 12개 부면의 학자 70명이 동원되어 2천8백여만원으로 제작된 것인 만큼 현 단계로서는 결코 작은 사업이 아니다. 세분된 분류도 보면 총 63개 분야로서 그 내용을 다음과 같다.
①민족 국가사=지리적 배경·고고학적면·민족형성·고대국가·체질 인류적면·민족운동
②정치·경제사=정치사상·법제·당쟁·외교·사회경제·근대경제발달·상공업·토지제도
③과학·기술사=농업·어업·지리·생물·의학·통신·조선·인쇄·천문기상·수학
④풍속·예술사=복식·주거·식품·예속·가족제도·여속·부락습관·문교풍속·연극·음악·조각·건축·서예·회화·공예
⑤언어·문학사=국어형성·음운발달·문법·어휘·방언·문자·국어학·설화·민요속가·시가문학·한문소세·국문소세·신소설·한문학
⑥종교·철학사=원시종교·불교·유교·기독교·천도교·신흥종교·불교사상·유교사장·실학사상·근대사상
이같이 세분된 각분야의 정리작업은 해방 후 싹트기 시작한 국학 20년의 총화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화사대계는 이제까지의 작업보다 더 큰 문젯점을 안고 있으며 그것은 곧 앞으로 개척해야 할 과제로서 제기 되고있다.
첫째 이들 분류 사는 전체 한국문학사의 안목으로 재편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 수록된 67편의 논문은 사가에 의하여 통사적 안목으로 서술된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이 총서의 편찬위원회는 개개 논문을 일관된 사관으로 귀일화 하는데 많은 고층이 있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그 통제는 막상 사소한 이견을 조정하는데 불과 했을 뿐이며, 문화사편찬의 안목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역시 당해 분야의 전문가라기 보다는 종사자가 집필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역사해석에 객관성을 결여하지 않았을까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이 총서가 보다 방대한 분량으로 확대되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완간된 63개 분야의 평균 원고 길이는 2백자 원고지 백장. 국판 1백20면씩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문학 분야에서 구비·시가·소설이 차지한 지면에 비하여 민족·경제·과학기술사 등의 분야는 여간 소홀한 것이 아니다.
현재 추진 중에 있는 한국사전 30권이 현실적인 요청에 의한 것이라면 분류사는 그것보다 더 큰 것으로 이루어져야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전권의 문화사대계는 상직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라는 결론이 된다. 물론 이것마저도 개인의 찬조와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해 가까스로 완성된 것인데, 그 계획이 당초부터 소규모로 꾸며진데에는 대학 부설연구기관의 출판 사업이 적어도 영리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여건에도 기인되는 것 같다.
세째는 세분화한 분야에 있어서 천문학자의 빈곤문제다. 가령 이 총서에서 군사분야가 전혀 다뤄지지 못했는데 이 분야 중 병기·화약에 관해서는 다소의 논문이 있으나 전략·병법은 단 한편의 논문도 찾아볼 수 없을 이만큼 황무지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사는 당해 분야의 사람들이 참가해줬으면 하는 요구가 있지만 실제 과학계 학자들 가운데 집필할만한 사람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민족 문화 연구소 측의 해명이다.
우리나라의 인문·사회과학 계통의 연구경향은 날로 국학에 눈을 들리고 있는데 비하여 자연과학계는 아직도 외국 것의 흡수, 소개에 머물러있다. 그것은 곧 이공 대학의 수업내용이 그를 입증한다. 그래서 옛 기록마저 극히 희귀한 과학기술사는 인문계통학자에 의존함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난관에 부딪쳐 있는 실정이다.
민족문학연구소 박성의 소장은 오는 3월말에 완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이제까지의 작업을 종합 검토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리라고 말한다.
박 소장은 또 누락된 분야의 보충도 계속 추진함으로써 증보판을 낼 계획임을 밝힌다. 그러나 증보 작업에는 인선과 자료 수집 등에 어려움이 더욱 개재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이종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