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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정국불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8일 「개설린」값 인상으로 촉발된 「마닐라」시 자동차운수노조의 파업은 학생들과 일부지식인, 그리고 전체노동자들이 가담한 전국적인 규모의 「데모」로 확대하면서 마침내는 「마르코스」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지난 14일에는 「로페스」부통령이 현정권에 대한 격렬한 비난을 퍼부으면서 자신이 겸직하고있던 농상직을 사임하는 등 격동을 거듭하고있다.
또한 「마닐라」의 모든 일간신문들은 14일 각 사의 합의하에 꼭 같은 내용의 공동사설을 게재하면서 비율빈에는 현재 혁명기운이 감돌고 있으며, 「마르코스」정부는 전국민의 신임을 상실했다고 전례 없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15일에 이르러 약간 누그러지는 듯한 징후도 없지 않으나, 비율빈정국은 여전히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여지며, 당면해서 「마르코스」대통령이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비단 비율빈국민 뿐이 아니라, 전 「아시아」인들의 커다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마르코스」대통령은 1969년 말의 총선거 결과 비율빈사상 처음으로 재선되었고, 그의 집권당인 국민당 또한 이 선거에서 국회의석을 대폭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세력을 공고히 구축한바 있었다. 그러나 과거부터 오랜 시일에 걸쳐 누적된 부정·부패와 빈부의 격차, 국제수지의 악화, 물가앙등 등은 일반국민생활을 위협하여 끊임없이 사회적 불안의 요인을 형성해온 것으로 전문되고 있다.
비율빈은 동남아의 「쇼·윈도」, 또는 「정열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 자가용 비행기로 한시간을 날아도 개인소유의 영지가 끝이 안 난다는 말로 표현되듯, 엄청난 부를 독점한 상층사회가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거의 아무 것도 국가근대화로 인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하층사회가 있어, 그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갭」이 벌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 사이에서 14개의 거대문벌이 국가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율빈에서는 아직도 「스페인」통치시대의 봉건적 토지제도가 그대로 남아있어, 토지개혁문제가 언제나 하나의 사회적 소란을 유발하는 구실을 해왔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비율빈의 「데모」는 비록 그 직접도화선은 「개설린」값 인상에 대한 반대운동처럼 보이나, 그 배경을 볼 때에는 결코 그것이 그 문제에 국한돼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소요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비율빈학생 「데모」는 작년 1월26일 재선된 「마르코스」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를 계기로 해서도 폭발한 일이 있으며, 그때 학생들은 「정부의 부패」와 경찰을 비난하면서 폭동을 일으켜 약간명의 희생자를 낸 일이 있었다. 결국 그것은 계엄령과 휴교령으로 잠정적인 냉각을 가져왔으며 여름에 접어들면서 수그러진 듯 했다.
비 정부가 재연된 「데모」를 어떻게 무마하여 현재의 난국을 수습할 것인지 우리로서는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비 정부가 대담한 내정개혁을 행동으로써 보여주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할 것이다.
비 정부는 대외정책에 있어서 자주외교노선을 지향하면서 대내적으로는 ①행정기구의 개편 ②수출 확대 ③평화와 질서유지 및 전복행위저지 ④노동자에 대한 생계비를 보장하는 급여체계수립과 실업자대책 ⑤선거제도의 개혁 ⑥토지개혁이 행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천적인 사회결함을 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일 것이다. 「스웨덴」의 유명한 경제학자 「군나르·뮈르달」이 그의 저서 『「아시아」의 「드라머」』에서 「부패」에 관해 논했듯이 비율빈을 포함한 「아시아」각국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사회불안의 요소는 단적으로 「부정·부패」의 만연에 있다고 하겠으므로 이 민요화한 부패를 과감하게 시정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약방문이기도 할 것이다.
동남아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지정학적 위치로 보나, 또 우리나라와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로 보거나, 우리는 비 정부가 하루빨리 이 일련의 개선책을 강구함으로써 정국이 순조롭게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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