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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만여 참고품 재정리-국립박물관장 김원용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상아탑을 잠시 물러 나와 관직에 몸담은 국립박물관장 김원용 박사는 20여 연간 침체해온 박물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구상으로 새해 벽두부터 분주하다.
우선 종합박물관의 새 청사로 들어갈 준비가 시급하고, 박물관이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의 확보와 양성, 그리고 박물관사업을 효율적으로 벌이기 위한 풍토개선 등…. 모두 독립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는, 그런 얽히고 설킨 문제들을 놓고 김 관장은 연초부터 연신 이마를 닦는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 부적한 사람이지요. 빈손으로 할 일은 어찌나 많은지….』
작년5월 김재원 관장의 후임으로 부임, 이제야 관장직의 소임이 무엇인가를 알만하다고 말하는 김 관장은 『하는데까지 최선을 다해야지요』하며 치다만 「타이프라이터」를 물려놓는다.
굉장히 바쁜 원고란다. 할 일들의 두서가 채 안 잡히는 모양. 생각나면 곧장 실행해야하는 김 관장의 성격이다.
금년12월 경복궁 안에 짓는 종합박물관이 완공되면 적어도 명년 초에는 이사를 가야한다. 새 청사가 지금보다 커지므로 박물관기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새 기분으로 살림을 차리는 김이니 이 계제에 국립박물관의 본분을 찾아놔야 할텐데…』 그에 소요되는 인원과 재정이 지금보다 몇 배로 확대되기 마련이요, 명년예산에 그것을 반영시키는 작업이 금년의 가장 큰 숙제라는 것이다.
건물은 문화재관리국에 의하여 덩그랗게 지어지지만 내부에 진열장을 갖추고 이전하는 비용만도 8천 만원.
금년도 국박의 총예산이 5천6백여 만원에 불과한데 비하면 그건 굉장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박물관은 시설만으로 전부가 될 수 없다. 현재 관장까지 합해 연구직이 11명, 일반관리직이 7명뿐.
『사람을 구해오는 일이 여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일생을 여기서 공부하겠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있는 사람들마저 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할터인데, 지금 같아선 아무리 쪼개고 쪼개도 일손이 너무 모자란 실정입니다. 더구나 앞으로는 유물의 보존수리 사진 등 기술부면의 사람도 확보되어야겠어요.』
김 관장은 현재 박물관이 대부분 창고 속에 묻어두고 있는 7만점의 참고 품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자료로서 제공되기 바라고 있다.
지금 덕수궁청사에서는 그것들을 끌어내 벌여 놓을 자리도 없지만 새 청사에 들어가면 일반 공개 품과는 달리 「스터디·컬렉션」으로 모두 내놓을 방침임을 밝힌다. 박물관은 창고지기가 아니요, 자료공개의 「서비스」기관이라는 지론이다.
국립박물관은 금년에 『한국공예대관』과 『동삼동패총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수년간에 걸친 부산동삼동 패총의 발굴보고서는 국내외 학계가 주목하는 선사유적의 보고 논문. 특히 공예대관은 이제 이 분야를 집대성한 출판물이 없는 만큼 아주 귀중한 자료집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예대관이 1백12만원의 출판 비로는 부족한 것이려니와 손도 모자라서 『결국은 매년 「시리즈」로 내어 방대한 총서를 꾸미게 되리라』는 것이 김 관장의 생각이다.
『박물관에서 자료집을 낸다는 것은 전시와 같은 일련의 사업이지요. 그래서 글을 많이 넣는 것보다는 사진을 위주로 해야하기 때문에 먼저 사진이 좋아야하고 또 인쇄도 어느 나라에 내놓아 부끄럽지 않은 것이 돼야합니다.』
박물관의 자료집·안내서들은 나라의 문화재를 선전하고 고양하기 위해 널리 배포해야 함에도 책자는커녕 사진도 「슬라이드」도 준비가 없어 학계나 외국인이 요구할 때마다 난처한 처지라고 김 관장은 토로한다. 간혹 박물관 유물을 외부사람들 와서 사진 찍는 예가 있는데 『그런 폐단은 안될 말입니다. 세계의 어느 박물관에서 국보를 들락날락 다루는 예가 있읍니까?』이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결 열띠어있다.
그러나 김 관장의 고충은 끝내 예산에 돌아가고 만다. 금년도 예산은 작년보다 1천 만원이 증액됐지만 본관과 분관경상비를 제외한 연구 및 출판 비는 5백50만원이 채 못된다. 특별한 전시회를 열어두도록 하나 착실히 낼 형편이 못된다. 작년에는 몇 개의 특별 전을 베풀었음에도 문헌으로 남은게 없고, 금년엔 또 개인 소장품 전을 가질 예정인데도 역시 마찬가지.
『민간인으로 구성되는 박물관 협찬회 같은 것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좋은 유품을 구입한다든가 자료집을 내는데 있어 정부예산만으로는 너무 부족한 형편이라서 사회인사의 협조를 받는 길이 없을까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외국에서는 그런 단체가 구성돼 큰 도움을 주고 있고 또 박물관에는 관장이나 「큐레이터」 가운데 사교를 잘하는 섭외담당관이 있어 매우 적절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읍니다. 그런 점에서는 박물관이 반관반민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 셈입니다.』
김 관장은 허허 웃으며, 할 일의 두서부터 찾아야겠다고 말을 맺는다. <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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