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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신문고] 술 취해 모는 자전거에 받혀도 음주 처벌할 수 없다니 기막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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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술 취해 모는 자전거에 받혀도 음주 처벌할 수 없다니 기막혀

서울 강남에 사는 김장언(39)씨는 3년 전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운동도 하고 다이어트도 하기 위해서였다. 주로 압구정동의 집을 출발해 가양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를 즐겼다. 김씨는 8월 24일 오후 7시쯤 자전거로 성산대교를 지나쳐 가양대교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순간 맞은편에서 오던 자전거가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중앙선을 넘어 돌진해왔다.

 그는 자전거에서 떨어져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치고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등을 긁혔다. 119 응급차에 실려가던 도중 동승한 사고 자전거 주인이 “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자 김씨는 응급차를 돌려 강서경찰서로 가게 했다.

 김씨는 상대방 운전자가 술을 마신 것 같다며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을 요구했다. 상대방도 음주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음주 측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도로교통법(제50조)상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전거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있으나 처벌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교통사고에 대한 벌금은 50만~100만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전치 3주에 자전거 수리 비용만 40만원을 낸 김씨는 “상대방과 합의를 시도 중이지만 여의치 않다”고 전했다.

 법률사무소 스스로닷컴의 한문철 대표 변호사는 30일 “합의가 안 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는 있으나 벌금을 내겠다고 하면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김씨가 민사소송을 내더라도 수임료가 더 비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자전거 사고는 2000년 6352건에서 지난해 1만2908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89명이다. 이 중 자전거와 보행자 간 사고 사망자도 8명에 이른다. 지난달 15∼16일 밤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도 비슷했다. 기자가 직접 속도계로 측정한 결과 시속 20㎞를 준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박모(42)씨는 “소주 1병을 마시고 경기도 광명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만에 왔다”며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박지영(23·여)씨는 “저렇게 빠르게 달리면서 전조등도 켜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스텔스(전투기)’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자전거 음주운전 처벌 규정 등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고 당사자뿐 아니라 망가진 자전거까지 수리해주는 자전거 종합보험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한국자전거단체협의회 우충일 국장은 “자전거도로 등 인프라가 열악한 곳이 많으므로 자전거 사고 전용 보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행정부 자전거정책과 김정한 팀장은 “안전한 자전거 이용을 위해 지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자전거 보험(대인) 가입을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경남 창원을 시작으로 현재 대전·울산 등 48개 지자체가 자전거 보험에 가입했다.

민경원·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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