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윗동네 칠성이였다. 명절 연휴가 끝나가는 어느 오후 동네 총각들은 심심했던지 조무래기들을 모아놓고 공터에서 권투시합을 열었다. 소방도로라고 해서 소방차 하나가 간신히 다닐 만한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기준으로 위아래 동네에 사는 조무래기들끼리 맞붙게 하는 경기였다. 헤드 가드는 없었지만 글러브도 있고 각목과 노끈을 이용해 만든 가설 링도 있어서 제법 시합 같았다.
나는 아랫동네 조무래기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때까지 권투 글러브도 한번 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긴장도 되고 살짝 겁도 났는데 칠성이를 보고는 안심이 되었다. 칠성이는 내 또래였지만 나보다 덩치도 작고 힘도 약했다. 나보다 싸움도 못했다. 그것은 꼭 싸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힘을 겨룰 일이 생기는데 나는 한 번도 칠성이에게 밀린 적이 없었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언제 왔는지 동네 계집아이들도 다 모였다. 평소에도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세탁소집 봉수 형이 중계방송을 흉내 냈다. 우리 쪽 코치를 맡은 사람은 안다 형이었다. 안다 형은 별명처럼 모르는 게 없이 다 아는 형이다. “권투는 딱 세 가지만 잘하면 돼. 눈을 뜬다, 움직인다, 때린다.” 갑자기 내 뺨을 때린다. “봐, 이렇게 눈을 감으면 안 돼. 맞을 때도 눈을 떠. 알겠지. 가볍게, 계속 뛰면서 움직여. 나비처럼. 그래야 벌처럼 쏠 수 있거든. 마지막, 이게 제일 중요한데, 때려. 맞지 말고 때리란 말이야. 그러면 무조건 이기게 돼 있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형이 말했다. “3라운드 시합이니까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해. 1회전에서 힘을 다 빼면 안 돼. 1회전은 탐색전이야. 자, 왼팔을 쭉 뻗어봐. 그래. 그걸 잽이라고 하는 거야. 가볍게 툭툭 던져. 상대가 공격한다고 무조건 주먹을 휘두르지 말란 말이야. 1회전에는 좀 맞아도 괜찮아. 어차피 경기는 3회전까지니까.”
심판은 연탄가게 만기 형이 맡았다. “아무 데나 때려도 괜찮지만 벨트 아래 특히 고추는 때리면 절대 안 된다.” 몸짓까지 섞어가며 경기 규칙을 설명하자 구경하는 계집아이들이 와르르 웃는다.
칠성이는 복싱의 ‘ㅂ’자도 모르는 것일까? 1라운드는 탐색전인데 1회전 공이 울리자마자 내게 덤벼들었다. 칠성이가 퍼붓는 소나기 펀치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도 함께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1회전은 탐색전이니까. 좀 맞아도 괜찮으니까. 3라운드까지 뛰려면 체력을 안배해야 하니까. 나는 가드를 올리고 계속 맞았다. 맞을 때 아프지는 않았는데 꽤 어지러웠다. 난 뭘 탐색했을까? 줄곧 눈을 감고 있었는데.
1분은 길었다. 마침내 1회전이 끝나고 30초 쉬는 시간 동안 칠성이는 간이 의자에 앉아 쉬었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줄곧 서 있었다. 어서 2회전이 시작되기만 바라면서 말이다. 안다 형이 내 허리춤을 잡고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말했다. “작전대로 돼가고 있어. 이제 마음껏 때려.” 2라운드 공이 울리자마자 뛰어나가던 나는 보았다. 칠성이가 하얀 수건을 흔들며 웃는 것을. 어이없는 칠성이의 기권으로 경기에서 이겼지만 나는 진 것보다 기분이 더 나빴다.
그날 이후 칠성이는 나만 보면 자꾸 웃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