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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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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밀튼」의『실낙원』에 나오는 천사들간의 하늘 전쟁 이야기는 끝없는 군비경쟁으로 더욱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가는 현대인간의「딜레머」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낙원의「하늘 전쟁」은 패전을 가름하는 천사들이 서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싸우다가 결국 신의 개인으로 평정되었다는 줄거리다.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켜 오면서 지금처럼 스스로 만든 무서운 살인 무기들 때문에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을 만큼「딜레머」에 빠진 때는 없을 것이다.
70년의 지구촌은 인간이 개발한 이들 무기로 해서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으로 평화 추구에 발돋움하면서 분 학구를 안은「공포의 균형」을 유지했다.
미군의「캄보디아」진공으로 확대된 월남전은 타결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은 채 지구촌을 계속 흔들었다.
세계가 좁아져 가는 하나의 공동사회라는 개념의 지구촌은 중동·「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등지에서 민족과 종족의 생존 및「아이덴티티」에 대한 갈망으로 해서 긴장을 더했다.
「기니」에 대안「포르투갈」의 침공, 영국의 대 남아 무기 판매 등 잔존 식민주의와 국리 위주의 상업주의는 지구촌을 어둡게 했었다.
아직도 국제정치의 주역들인 미-소는 냉전 질서 속에 되풀이되는 전쟁 일보 전의 대결에서 화해와 협상으로『공존』을 추구하는 기미를 보이면서도 영향권 확대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쉬지 않았다.

<군비 경쟁으로 균형유지>
소의「쿠바」군함기지 건설, 영국의 후퇴로 생길 공백을 노리는 인도양 및「수에즈」이동의 해군력 증강, 중동에서의 강력한 발만 구축,「베를린」의 긴장조성 등은 미-소의 긴장된 대치를 계속 보여주고 있는 초년지구촌의「이슈」들이었다.
핵무기에 의해 인간이 자멸할지 모른다는 의식이 전략 무기제한 회담(SALT)을 불가피하게 만들었을지 모르나 미-소는 더욱 새로운 무기개발로 군사력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전쟁은 딴 수단에 의한 외교, 즉 국가 정책의 수단』이라고 한「카를·폰·클라우제비츠」전쟁이론은 낡은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곧이어 불어닥친 냉전은 평화의 기대를 깨었고 여러 국가들이 자체 국력증강에 역점을 두어 군비경쟁으로 치닫게 했다. 이러한 경향은 핵무기 확산 내지를 거부, 독자적인 핵 개발을 서두르게 했다.
무력은 한국 전, 중동 전, 소의「체코」침공 등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핵 시대에서도 목적 위성과 분쟁 해결의 적극 수단이 되었다.
62년 10월 미-소 대결의 상징이 되는「쿠바」위기는 여러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화해와 타협을 통한 공존보다는 가능할 경우 언제나 무력사용 혹은 그 위협의 전략적 수단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핵 무능 성 이용 모 전법도>
앞으로 제2의「쿠바」사태가 있을 경우 충돌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쪽의 우월한 군사력이 상대 쪽을 무릎을 꿇게 할 것인가? 굴복할 경우, 무슨 조건이다 것인가? 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의 경우, 핵전쟁을 의미하며 어느 쪽이 어떤 조건으로 굴복 혹은 후퇴하느냐는 것은 국제 무력정치에 의한 타의 희생이 포함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코앞에 건설되는 소련의「쿠바」기지가 언젠가는 멀리 동떨어진 서「베를린」과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2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동-서독(베를린)·중국문제 등은 앞으로 핵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강대국의 무력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지구촌의 문제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현대의 전쟁은 핵의 전면전이 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그러나 한국전이 있었고 중동 전쟁·월남전이 있다. 이것은 핵의 한계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 핵무기의 파괴력은 굉장한 것이지만 이것은 사용 못되고 있다. 자타가 칼이 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택동이「게릴라」전을 선전하는 것은 이러한 여건을 뒷받침해서인지 모를 일이다.

<열강은 대결보다 배후조정>
사실상 대전 후 세계의 전쟁 위기는 강대국간의 정면 대결에서보다는「게릴라」전에 의해 야기된 분쟁에서 더 많이 봤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앞으로 전쟁의 위기는 강대국의 직접 대결보다는 이 같은 국제분쟁에 개입된 강대국의 유도에 더 많이 달렸다고 보겠다.
인류사는 전쟁과 평화로 엇 갈려왔다. 인간은 지배욕·영토확장·보복 등 많은 이유로 돌로 된 도끼로거나 원자탄으로 전쟁을 해 왔다.
인구 늘어 먹일 수가 없을 때, 문명과 기술발달로 국력이 팽창했을 때 전쟁은 탈출구와 수단이 되었었다.
어느 기간 인류는 상호평화와 단결을 향해 평화를 누렸다. 절대적인「헤게모니」, 강력한 제국의 통치, 또는 열강의 세력 균형 밑에서 2세기의「팍스·로마나」, 19세기의「막스·브리태니커」등. 그리고는 통치권의 강요·새 세력의 등장·「이데올로기」의 차이 등으로 전쟁을 통한 새 질서로 이어졌다.

<이성만이 자멸위기 제거>
지금까지의 대전은 한 문명의 파괴에 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대전이 있다면 그것은 한 문명뿐이 아니라 일류전체의 생존자체를 위협하게 되었다.
「공포로 유지되는 평화」의 그림자 속에서 현대인간은 자기 손에 자멸할지 모른다는 「딜레머」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영웅·영광·용맹 등으로 표현될 수 있었던 지난날 전쟁의 낭만(?)에 향수를 느끼면서.
공포로 지탱되는 오늘의 평화가 얼마나 계속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세기의 석학 그「칸트」는『인간이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피어 린 전쟁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개탄하면서 인간의 이성에 희망을 두었다고 한다.
인간이 전쟁을 하는 것일진대 평화를 위한 인간의 노력과 지혜로운 이성의 오늘처럼 요구되는 때도 없을 것이다. <조성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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