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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지배구조 개선 없이 선진 한국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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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윤제
서강대학교, 경제학

한국 사회가 지금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과제 중 하나는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여러 부정적 현상들의 밑바닥에는 지배구조와 승계의 문제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부터 기업, 금융기관, 나아가 종교단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노정되고 있다.

 서구가 근대화 이후 도입, 운영해온 제도와 지배구조는 수세기에 걸쳐 그들의 전통, 문화, 습속 위에 점진적 발전단계를 거치며 실용적으로 개편, 확립돼 온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가 도입한 대부분의 제도와 지배구조는 전통과 문화의 단절 위에 이뤄진 것이다. 지금의 국가지배구조는 해방 후 서구, 특히 미국에서 수입된 제도에 1987년 민주화 당시 처한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다. 수입된 제도가 현실에 적절치 않음으로써 과거에는 초법적, 또는 편법적 수단에 기대어 이를 운영해 오기도 했으나 이제 민주화된 시대에 그것이 용납되지 않으면서 각 부문에서 심각한 마찰음을 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보다 실용적, 효율적 지배구조를 도입하지 않으면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많은 도전들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고 주요 공직뿐 아니라 공기업, 금융기관, 각종 단체장들이 모두 바뀌게 되는 지금의 지배구조로는 격변하는 세계환경 및 동북아 정세에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국가경영과 기관운영을 해 나가기 어렵다. 국가와 기관의 목표가 수시로 바뀌고 정책의 시계가 짧으며 심지어 국가정책과 경영방향의 단절이 생기고 있다. 국가, 공기업, 주요기관 경영이 단기적 목표에 매여 표류하며, 장기적 비전은 벽에 잠시 걸려 있는 장식물일 뿐, 실종되어 있다. 정권이 5년마다 바뀌다 보니 정부 고위직의 평균 재임 기간이 매우 짧고, 공기업, 정부 관련 단체, 대주주 없는 기업의 장들도 대개 단임 혹은 그보다 짧은 주기로 바뀌고 있다. 이 짧은 재임 기간 중 사적 목표나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다 물러나게 된다.

 심지어 국가 미래에 대한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일관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조차 거의 3년 단위로 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그것도 채우지 못하고 바뀌는 경우가 많다. 금융지주회사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외국의 금융기관 최고경영자는 잘 정립된 승계 과정을 거쳐 대개 10년 혹은 더 길게 경영을 책임지며 단기적, 장기적 관점 모두에서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잘 경영되고, 장기적 경쟁력이 있겠는가.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경우는 가족지배가 세대를 넘기면서 오너경영의 장점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 주요 재벌들의 경우 이제 3세 경영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경영능력과 기업가정신이 반드시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외국의 경험을 보더라도 창업주 시대를 함께한 2세까지는 기업이 번성, 발전하나 3세로 넘어가면서 쇠퇴하는 경우가 많다. 부유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선대의 도전정신이 줄어들고, 세상의 밑바닥 현실을 직관하고 돌파해나가는 능력이 떨어지며, 자금력을 바탕으로 쉬운 돈벌이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많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재산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상속이 인정된다. 그러나 한국의 자본주의는 순환출자를 통해 재벌 가족이 재산권이 보장하는 지분보다 훨씬 큰 경영지배권을 전 계열 기업군에 행사하는 것을 보장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편법과 소액주주들의 희생을 통해 세대 간 증여와 상속, 그리고 경영지배권을 세습해 오고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지극히 중요한 이 대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능력을 시험받은 최고경영자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경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길을 터 줄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큰 문제는 역동성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활력과 계층 간 이동성이 줄어들고 있으며,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 나가야 할 많은 분야에서 국가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렵사리 2만 달러 시대를 열고 중진국 반열을 벗어나려 하고 있으나 지금의 각종 제도는 우리가 여기서 더 나아가는 동력을 유지하기에 더 이상 적절치 않다. 전반적 제도 개편 없이는 선진국의 난관을 뚫기 어렵다.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지배구조 개선은 지금 한국 사회가 해 나가야 할 가장 핵심적 과제다. 그리고 이는 국가지배구조의 개선에서부터 돌파구를 찾아 나가야 한다. 여야 대치 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약속한 개헌은 다시 실종되는 것인가. 이번 정부에서는 충분한 국민적 토론과 깊은 모색을 거쳐 국가지배구조의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조윤제 서강대학교,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