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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자=정일권>|정치적 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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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1면

①정치적 위치
②법적지위
③비서실
④역대의 얼굴
63년 공화당 정부가 들어선 후 국무총리가 바뀐 것은「12·19개각」으로 두 번 째. 최두선 전 총리(현재 적십자사 총재)가 5개월도 채 못되는 짧은 기간 재임한데 이어 정일권 총리가 6년이 넘는 정부 사상 최 장수로 총리직을 맡았었다.
이런 대조적인 재임 기간은 주변 상황이나 여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도 자체보다 인물에 더 비중을 두는 정치 현실의 일면이기도 하다.
국무총리의 정치 좌표는- 적어도 공화당 정부에선- 격동했던 정치 여건과 함께 총리 개인의「인품」도 적잖게 작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63년 l2윌17일 군정에서 민정으로 넘어서면서 공화당 내각의 첫 총리가 된 최두선씨는 정치적 흠이 없는 인품으로 야당의 날카로운 공세를 막는「방탄」역으로 그 자리의 성격이 선망되었다.
5·16 군사 혁명 후 1년 반만에 회합에 나온 야당은 군정의 뒤처리를 에워싸고 치열한 대 정부 공세를 퍼부으리라고 예상되었으며 최씨의 총리 기용은 이런 공격의 화살을 막기 위해 배치 됐던 것 같다. 그러나 집권층 안의 복합적 여건과 권력 작용면에선 최씨의 무게 있는 인격이나 성품이 잘 적용될 수 없었다.
더구나 혁명 주체들을 포함한 군 출신들이 뼈대를 이룬 공화당 정부안의 역학 관계는 급변 적이었고, 최씨의「초빙 연사」같은 입장에선 그런 상황에 맞춰 가기 어려 얻다. 이런 가운데 한-일 회담의 교섭에 반대하는 학년「데모」로 정국이 혼란해지자 총리에겐「방탄」 만이 아니라 수습의「과단성」이 요청되었다.
당시 최씨를 총리로 천거했던 한 공화당 간부는『민정의「심벌」로 중후한 인품의「시빌리언」을 인선 기준으로 삼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최 총리에게 과감한 역량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최 총리는 군정에서 민정으로 잇는 가교 역의 흔적을 남긴 채 물러났다.
최씨에 이어 들어선 정일권 총리는 난국 수습에 보다 과감했다. 대통령의 강경 자세를 배경으로 정 총리는 취임 한 달도 안되어 6·3학생「데모」사태로 계엄령을 선포했고 뒤이어 대통령의 담화를 받아 학원의 정상화를 의해『정치 교수·학생을 축출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 내각은 이른바「돌격 내각」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한-일 협정 조인·월남 파병 실현용 국가적 난제가 해결되고 정국이 안정을 유지하게 되자 정 내각은「중화 내각」으로 체질이 바뀌었다. 바로 이런 체질 변화는 국무총리의 정치적 의지를 시사해 준다.
정 총리는 자신의 위치를 강력한 영도력 행사를 위한「수단」에 두지 않았다.
정부 제2인자의 법률적 위치로 해서 집권층 안에서 웬만큼 행사 할 수 있는 권력마저 그는 최소한으로 제한, 주변의 영향력을 대통령 밑으로 모으도록 했다. 국무위원의 임명 제청만 해도 거의 대통령이 직접 인선하거나 총리로서는 대통령의 의중을 타진한 뒤 이루어 졌다.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집권 세력 안에 불협화음이 일 때도 극히「조심스럽게」거리를 두어 말썽의 와중에 말려들지 않았다.
또 집권 세력 안의 간혹 있는 분파 작용 속에서도 정 총리는「중도」를 최선의 길로 잡았다. 더욱이 주변에「권력의 영역」을 바로 차리지 않는 순수한 행정가로서의 입장은 장수 재임의 큰 이유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제3공화정에서 국무 총리직이 비록 행정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고도 하나 국무총리를 맡은 사람 자신이 행정 인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8대 국회에 진출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정일권씨의 경우만 하더라도 정치적 신장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며 또 새로 임명된 백두진 총리가 총리로서 어떤 영향을 미쳐 나아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단지 백 총리는 정치적 영향력을 자제했던 정 총리와는 조금 다르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런 관측은 그가 취임 첫 날부터 보여준 활기 있는 움직임과 발언, 그리고 공화당 안에서 정치적으로 비교적 투명하다는 이유 때문에 나오는 것 갈다.
단지 그가 군 출신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정 총리가 조용히 발표했던 대 군부「컨트롤」이나 대 미 관계 초점을 어떻게 이어나갈지가 주목되는 것이다. <윤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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