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원홍, 최태원 회장 투자금으로 김준홍 손실 메워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최태원(53) SK그룹 회장 횡령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이 최 회장에게서 받은 투자금 6000억원 중 900여억원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900여억원 중 512억원은 김준홍(47)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28명의 투자 손실 보전에 쓴 사실도 확인됐다.

 25일 과세 당국과 재계 등에 따르면 국세청은 2010년 6월부터 2011년 3월까지 김 전 고문이 대표로 있던 금융상품 판매사인 에이플러스에셋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조사서’에는 투자 목적으로 최 회장이 건넨 개인 돈 가운데 김 전 고문이 사적으로 사용한 돈의 액수와 사용처가 상세히 기재돼 있다. 가장 금액이 큰 건 투자 손실 보전 목적으로 지급된 512억여원이다. 김준홍 전 대표에게 129억여원을 포함해 28명에게 지급된 것으로 나온다. 또 최모씨 등 4명에게 195억여원을 빌려 줬으며 고용 임직원 급여로 52억여원, 중국 현지법인 투자자금으로 46억여원을 사용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를 포함해 김 전 고문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투자금은 모두 909억여원에 달했다. 이로써 6000억원의 사용처도 대부분 확인됐다.

 앞서 김 전 고문이 최 회장의 투자금 2000억여원을 에이플러스에셋이 중개하는 보험계약의 보험료로 납입한 사실이 드러났었다. 나머지 3000억여원은 선물투자금으로 사용했으나 손실을 봤다. 이번 자료는 특히 김 전 고문과 김준홍 전 대표가 서로 공모한 뒤 최 회장을 속여 SK그룹에서 나간 선지급금 450억원을 빼돌렸다는 SK 측 주장에 신빙성을 높여 준다. 이 450억원 역시 김 전 고문의 보험료 납입에 사용됐다.

 또 김 전 고문이 최 회장에게서 개인적으로 송금받은 돈의 일부를 김준홍 전 대표의 투자 손실 보전에 썼다는 건 두 사람이 최 회장의 자금을 제멋대로 사용해도 되는 ‘쌈짓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기소한 최 회장의 이번 회사 돈 횡령사건의 맥락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최 회장 측은 1심에서 “횡령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다가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항소심에서는 기존 주장을 뒤집는 전략을 택했다. 2심에선 “펀드 조성 및 선지급에는 관여했지만 해당 자금을 김준홍 전 대표가 김 전 고문에게 송금한 사실은 몰랐다”고 번복했다.

 항소심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김 전 고문에게 속아 사기를 당했다”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총 6000억여원의 투자금을 맡겼는데 이를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7월 대만에서 체포된 김 전 고문은 조만간 국내로 송환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 타이베이 주재 한국 대표부는 대만 이민서 측 요청으로 김 전 고문에게 여행자 증명서를 발급했다. 한국 송환을 위한 절차다.

 하지만 대만 당국은 구체적인 김 전 고문 추방 날짜, 즉 한국 송환 날짜를 밝히지 않고 있다. 최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리는 27일 이전까지 송환될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박민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