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바꿈하는 골동상품들|신화취급경향의 속셈과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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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의 골동상가는 최근 신화취급으로 탈바꿈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금년 들어 본격적인 현대화우상으로서의 화랑이 두셋이나 거리에 생긴데 자극된 것이기도 하나,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골동 상 등록제에 따른 표면적인 업종변경의 기미를 엿보인다.
골동 상이 집중해 있는 관훈동·인사동·견지 동 일대에는 지난가을부터 서화를 취급하는 점포가 부쩍 늘어났으며, 이들 점포에서 현대작품은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세기초로부터 현역작가의 것에 이르는 이들 작품은 골동상의 성격상 동양화를 비롯해 서예·날수를 포함하며 간혹 유서까지 곁들인 경우도 있다. 이것들은 고서보다도 많은「스페이스」를 차지하며 또 전면에 진열되는 형편이다.
골동 상 거리에서 특히 최근에 주목할 만한 사건은 고옥 당이 동양화와 수석을 취급한다고 11월말 신문지장에 개업광고를 냈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골동상계에서 가장 짭짤하고 규모 큰 도 자 전문 상으로 알려져 있는 고옥 당은 1층 점포를 현대 것 중심으로 하는 동양서 실로 바꾸는 한편, 옛 도자기 및 금속류를 2층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골동상의 모습이 이같이 새로운 양상을 보이는데는 몇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근년에 고서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비교적 서화에 무관심하던 골동 상들이 다투어 여기에 손을 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서화는 이제 한계에 달하여 구매자들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보다 싼값인 신화로 그 수요의 일부를 채워주게 된 것이다.
둘째, 신화 상이 가을성수기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데에도 적지 않을 자극이 된 것 같다.
금년 이 지역에 생긴 신화 상은 현대화랑·서울화랑 등이며 이곳 이외에는 청 화랑·신세계화랑·삼보화랑 및 조선「호텔」화랑 등이 신설되거나 운영방침을 새로 바꿈으로써 우리 나라에도 최초로 본격적인 화상출현의 가능성은 보여주었다.
이 상설 화랑들은 종전대로 위탁형식의 그림매매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그림을 수매하기도 하고 혹은 저 명 작가의 초대전을 통하여 고객을 불러들이기 시작했으며 그것으로써 적잖은 재미를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골동 상들이 신화취급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보다 중요한 세 째 이유는 새 문화재보호법의 발효에 따라 관계당국의 감시를 모면하기 위해 탈출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닌가 해석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은 문화재보호법의 시행령과 내규까지 마련하고 오는 1월초부터 1개월간 문화재 매매업자에 대한 등록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종래의 문화재매매업자는 물론,「고물상」으로서 당해 경찰서의 허가를 받아 상행위를 하며 문공부에의 등록이란 다만 골동품을 취급한다는 서류상의 신고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공부는 71년부터 개인소장 문화재에 대해서도 등록을 권유하고 접수할 계획이므로, 업자가 가지고 있는 동산문화재를 우선적인 대상으로 삼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문화재보호법 제56조2항에 의하면 비지정의 동산문화재를 매매하거나 교환을 업으로 하는 자는 문공부에 등록하도록 규정돼있으며 그들 업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재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의 지시나 보고를 명할 수 있게 하였다. 이「지시」와「보고」는 영업행위에 대한 제약과 감시를 의미한다.
만약 등록하지 않고 영업행위를 할 때에는 법제69조2항에 의거하여 1백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게된다.
또 시행령에 의하면 매매에 대한 장부를 비치해야하고 등록사항 중에 변동이 있거나 30일 이상 휴업하고자 할 때는 즉각 당국에 신고해야한다.
골동 상 즉 문화재 매매 업이 이같이 까다로운 규제를 받는데 비하여 신화 상은 그런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즉 고물관련법이나 문화재보호법의 규제가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골동 상들은 재빨리 신화 쪽으로 기울어지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최근에 급증하는 신화 상이 수익률이 높은 장사냐 하면 결코 그렇진 못하다. 금년 가을로 봐 서는「갤러리」의「붐」을 이루는 느낌조차 없지 않으나 실제로는 대개 전시장대여에 불과하며 그 나름으로 그림매매를 위주로 하는 화랑이란 한두 군데뿐이다.
화상의 시도로서 출발했던 삼보화랑은 운영 난에 빠져있고 큰 기대 속에 개점한 조선 「호텔」지하 화랑은 몇 개월을 못 견디어 문닫고만 형편이다. 현대작품은 아직도 화상을 통하는 수요자가 적으며 모 정당한 가격을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
우리 나라 신화 상이 아직 미미한 실정임에도 골동 상들이 갑자기 이 분야까지 폭 넓히려는 저의에는 다분히 영업상의 위장 책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라 풀이할밖에 없다. 이제까지의 골동상계의 생리에서 보면 문화재 매매란 어차피 모험적인 상행위이고 또 암매매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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