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의 착륙|박 소좌 귀순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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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거진=김영휘·김재혁·장창영 기자】3일 하오 2시27분쯤 북괴 공군 박성구 소좌가 「미그」 15기를 몰고 동해 바다 위를 낮게 미끄러져 내린 곳은 강원도 고성군 거진면 송죽리의 모래밭 해안이었다. 처음 박 소좌는 기체를 버리고 모래사장에 뛰어내려 8백m쯤 서쪽 송죽리 2반 독립 가옥 이순학씨 (65) 집에 들어가 마당에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며 자유의 땅을 밟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털목도리가 둘린 가죽 「잠바」에 밤색 바지의 북괴 공군 조종복을 입은 그의 키는 1백72m가량의 몸매였다.
이날 집 뒷산에서 낙엽을 긁다가 뜻밖에 비행기 착륙을 목격한 김문자씨 (여·50·고성군 거진면 송죽리 2반)의 말에 따르면 느닷없이 바닷가에서 비행기의 굉음이 나길래 바라다보았더니 「239」란 기체 번호가 선명히 보인 전투기 1대가 6백m쯤 떨어진 해안의 백사장에 동체를 부딪치며 비상 착륙 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착륙하는 순간 기수가 1백80도 회전하는 듯 했다.
김 여인은 바로 일손을 놓고 인근 모부대 수송대에 신고하는 한편 3백여m쯤 떨어진 민가에 이 급보를 알렸다.
박 소좌가 몰고 온 MIG 15기는 모래사장에 25m나 미끄러져 나가다가 멈추었는데 이때 모래 속에서 오른쪽 날개와 분사구 하부가 부서지면서 양쪽 연료 탱크가 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으며 왼쪽 바퀴도 크게 부서졌다고 김 여인이 당시의 광경을 말했다.
자유의 땅을 처음 밟은 박 소좌는 맨 먼저 인근 송죽리의 이순학씨 집을 찾아들었다. 마당에서 이씨의 부인 김동집씨 (46)와 3남 종국 군 (19)을 만나자 박 소좌는 처음으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김 여인에 따르면 박 소좌의 물음에 종국 군이 『여기는 자유 대한민국, 송죽리다』고 대답, 이 순간 박 소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국방부가 어디냐』고 다시 묻더라는 것이다.
종국 군이 7백여m를 달려 육군 1668부대에 신고, 곧 3명의 육군이 출동해서 박 소좌에게 『손들어라』고 말하자 『나는 비무장이다』하면서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박 소좌는 이들 군인 3명의 안내로 부대장 최영귀 준장을 만나 원산 기지를 이륙해 훈련 도중 탈출해 온 경위를 비로소 털어놨다.
귀순한 박 소좌는 헬리콥터 편으로 3일 하오 6시30분 서울 여의도 공군 기지에 옮겨진 뒤 「세단」에 태워 시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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