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복지예산 모자라 싸우지만 무상보육서 1조 넘게 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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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공약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과 책임공방이 거세다. 기초연금은 내년 7월 도입할 예정이지만 이미 시행에 들어간 복지 공약도 있다. 0~5세 무상보육, 암·심장병·뇌질환·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 질환 보장, 저소득층 복지 확대 등이 그것이다. 본지는 복지 확대 이후 예산이 제대로 쓰이 는지 긴급 점검했다. 그 결과 돈이 새고 있거나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전업주부 이모(30·여)씨는 올 3월부터 15개월 된 아들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그러기엔 이르지만 늦게 신청했다가는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서둘렀다. 대개 오전 9시 넘어 맡기고 오후 3~4시에 데려온다. 이씨는 “애들이 없는 동안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점심때 돌아와서 청소·장보기·은행업무 등을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애들은 하루 6~7시간 어린이집을 이용한다. 아이 한 명에게 들어가는 보육료 예산은 52만1000원(만 1세 기준). 이는 종일(12시간) 이용하는 걸로 가정해 책정한 것이다. 따라서 시간당 단가로 따지면 22만원가량이 더 나가는 꼴이다. 정부·지자체가 지원하는 52만원의 보육료는 전액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20개월짜리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주부 김모(33·여·서울 서대문구)씨는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보육료가 무상으로 지원되니까, 남들이 보내니까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도 있다”고 말했다.

 무상보육은 올 3월 여야 만장일치로 전격 시행됐다. 시행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까지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재원 분담을 두고 볼썽사납게 충돌하더니 이제는 예산 누수가 도마에 올랐다. 올해 보육예산은 8조4195억원(지방비 포함)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최근 2012회계연도 결산 검토보고서에서 보육료 예산 누수를 지적하며 “(무상보육) 사업 초기에 시정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대규모 재원 낭비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현행 무상 보육료는 아이의 이용 시간을 따지지 않고 무차별로 지원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공개한 어린이집 실태조사를 보면 이용 아동 136만여 명 중 하루 5시간도 채 이용하지 않는 0~5세 아동이 5.7%, 5~7시간 이용자가 36.8%다. 42.5%(57만9700명), 즉 10명 중 4명에게 실제 이용 시간의 두 배에 달하는 보육예산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복지부의 도움을 받아 본지가 추정한 결과 7시간 이하 이용 아동에게 종일 기준 보육료가 지급됨으로써 낭비되는 예산은 연간 1조14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결위는 “맞벌이가정의 아동은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반면 전업주부 아이는 6시간대여서 아동 한 명당 매일 1시간 이상의 보육료가 불필요하게 나간다”고 지적했다.

 이런 예산 누수가 생긴 건 정치권이 어린이집 이용 행태를 면밀히 따져보지 않고 덜커덕 무상보육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복지부가 나서 전업주부 아이의 무상 이용 시간을 반나절(7시간 정도)로 제한하려 했으나 정치권이 없던 일로 만들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차흥봉(전 복지부 장관) 회장은 “한국 복지는 7부 능선에 올라선 상태다. 그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복지제도를 많이 만들었다. 새로운 복지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복지의 예산 누수 대책을 세우고 전달체계를 체계화하는 등 내실 다지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이서준·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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