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가진 북한, 우리 탈출한 호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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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어재단과 중국 칭화대,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한·중 공동 학술대회가 24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기로에 선 북·중 관계’를 주제로 열렸다. 왼쪽부터 전성흥 서강대 교수, 이상현 세종연구소 박사, 정종욱 전 주중대사, 진창이 중국 옌볜대 동북아연구원장,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 청샤오허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김경빈 기자]

“북한은 세 차례 핵실험을 통해 ‘종이호랑이’에서 ‘동물원을 탈출한 진짜 호랑이’가 됐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한국과 중국 전문가들의 인식은 엄중했다. 니어(NEAR)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과 중국 칭화(<6E05>華)대, 중앙일보가 24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국제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한 ‘기로에 선 북·중 관계-한·중 공동 학술대회’에서다. 그러나 ‘우리를 탈출한 호랑이’를 어떻게 제어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뚜렷한 입장 차를 보였다.

 추수룽(楚樹龍) 칭화대 국제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축사를 통해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하는 동시에 다른 국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든지, 원조를 얻어 낼 수 있다든지 하는 꿈은 꾸지 말아야 한다”며 “게임은 끝났다. 이제 북한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경고는 한반도에서 북한이 취하고 있는 도발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반대하는 것이지,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존 전략적 입장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추 부소장은 “한반도 비(非)핵화 목표를 실현하는 길은 6자회담뿐”이라고 말해 중국 정부의 입장과 궤를 같이했다.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는 “6자회담을 둘러싼 중국과 북한의 공동 보조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핵 프로그램 포기를 내용으로 한 9·19 합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등 중국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고 있다”며 “북한과 중국의 이 같은 공세에 한국과 미국은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런 상황에서 ‘핵 포기 없이는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원칙론만 가지고는 그들의 공세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과의 협조를 통해 출구를 마련할 경우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북·중 관계를 동맹이란 정적인 관계보다 전략적 이해에 따른 동거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며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여 미국의 북핵 정책에 영향을 끼쳐야 중국이 움직이고, 북한이 최종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샤오허(成曉河) 중국인민대 교수는 “그동안 ‘전쟁, 혼란, 핵은 안 된다’는 ‘3불(不)’ 정책이 중국의 북한에 대한 마지노선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 순서가 핵, 전쟁, 혼란으로 ‘핵’이 우선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결코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대응이 미국과 한국에 비해 절대 가혹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창이(金强一) 중국 옌볜(延邊)대 동북아연구원장은 “김정은 지도부만 바라보지 말고 북한 사회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며 “북한에서 시장이 이미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개혁과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성흥 서강대 교수는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한반도 안정이라는 포괄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는 반면 한국은 북핵 문제가 한반도 안정의 선결조건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과연 북한 핵 폐기에 어느 정도 열의를 갖고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날 사회를 본 정종욱(전 주중대사) 동아대 석좌교수는 “북·중 관계는 약을 끓이는 약탕은 바꾸더라도 약은 안 바꾼다는 약탕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김정은 제1위원장의 32세의 나이 차이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북·중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일방적 연기조치에 대해 최명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한은 남북 관계를 목표가 아닌 대북, 대미 관계를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사용한다”며 “남북 관계 개선의 속도를 조절해 북·중, 북·미 관계의 레버리지로 사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기로에 선 북중관계-중국의 대북한 정책 딜레마』(중앙books 출판) 출판기념회로 이어졌다. 출판기념회에서 정덕구 이사장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본심은 변화 중”이라며 “남북한 통일에 대한 중국의 부정적인 민심을 줄여 나가기 위해 한·중 관계를 우호적으로 관리하는 데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사진=김경빈 기자

◆니어재단(North East Asia Research Foundation)=동북아시아 전략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민간 싱크탱크. 동북아시아 역내 무역자유화와 집단안보체제 구축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동아시아 경제 통합을 위한 로드맵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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