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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단적 자위권은 신냉전의 전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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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논설실장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추진 중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놓고 한·미 핵심 외교라인 간에 심각한 토론이 있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취임 인사차 지난 5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한반도 유사시 미·일 동맹의 파트너인 미국을 위해 일본 자위대가 개입하는 상황에 대한 한국 측의 우려가 전달됐다. 러셀 차관보는 일본이 60년간 민주주의를 해온 나라여서 스스로 제어하는 기능이 작동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로서 재무장화와 군사대국화를 내다보는 한국의 합리적 의심이 일본인 아내를 둔 미국 실세 외교관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러셀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도착한 뒤인 9일 “일본이 자신을 지키는 힘을 강화해 지역 안정에 공헌하겠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했다.

 이제 집단적 자위권은 중국 견제를 위한 미·일 동맹의 필수 옵션이 된 형국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일본이 서두르고 미국이 따라가는 것 같지만 실은 미국의 요구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2000년 1차 아미티지 보고서는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 수준으로 격상할 것을 요구했다. 미사일방어(MD)체제 협력을 강화하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제약을 해소할 것을 제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항복시켰던 미국이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전범국에 다시 총을 들라고 요구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국의 동북아 전문가들이 초당적으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고, 다수가 부시행정부의 요직에 기용됐다. 리처드 아미티지는 국무부 부장관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주물렀다.

 2001년 6월 랜드연구소 보고서는 한술 더 떴다. 보고서는 “헌법을 개정하고 방위 지평을 자국 영토 너머로 확장하며 합동작전을 지원할 역량을 획득하기 위한 일본 내부의 노력을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일본이 모래 속에 처박은 고개를 들어야 하며 다가오는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일장기가 펄럭이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열흘 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채택했고, 전함 24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인도양에 파견해 연합국 전력에 필요한 연료의 절반을 조달했다(개번 매코맥, 『종속국가 일본』, 2008년 창비).

 문제는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 국민 다수가 일본의 재무장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카드를 지역 안보를 위해 선의로 사용하겠다면 최소한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문제로 일본 외교관과 토론했다. 그는 역대 일본 총리가 사과했다고 했고,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럴 경우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을 따라야 사과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지난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유대인 집단학살 수용소 벽에서 머리를 숙였듯이 아베 총리도 우리와 중국에 똑같이 해달라고 했다. 그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도 러셀 차관보에게 “한 장의 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이 단기적인 이익에 치중해 미·일 동맹 중심으로 밀고 나가면 다자간 이익의 균형이 무너진다. 미국 중심의 해양세력과 중국 중심의 대륙세력의 재격돌이라는 신냉전이 현실화되면 동북아는 통제 불가능의 군비경쟁에 돌입할 것이다. 말 그대로 세계의 화약고가 된다. 최대의 피해자는 양대 세력에 낀 한국이다. 경제는 상호의존적이지만 정치·안보에서는 갈등관계인 아시아패러독스 해결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그래서 한국으로선 절박한 대안이다. 한·중·일과 미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도 받아들이는 다자 구도에서 소프트 이슈로 신뢰를 구축해 나가자는 것이다. 탈(脫)냉전을 향한 노력을 미국과 일본은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반목했던 유럽 국가들이 헬싱키 프로세스로 다자간 평화와 공존의 틀을 구축했던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국가 간 의존도가 높은 시대에는 양자 동맹 중심의 대결적 안보보다는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력 안보가 바람직하다.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4월 세계경제연구원 강연에서 “동아시아 내에서 일종의 안보공동체를 구축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강대국들의 합리적 이성이 작동될 때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야 실현 가능할 것이다.

이하경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