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끼치는 일본정신의 단면|삼도유기부의 활복이 뜻하는 것|안수길<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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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의 전후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요. 「노벨」문학상의 물망에도 여러번 올랐듯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삼도유기부씨가 25일 할복 자살했다는 보도는 같은 작가의 처지에서 충격을 금치 못했으며 생각하는 바도 적지 않았다.
우선 충격적인 것은「르네상스」적인 다재다능한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소설·조곡·영화등 각 부면에 눈부신 활동을 했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 45세의 한창 나이에 스스로 귀중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대해서이다.
반드시 상심하는 것만이 작가의 능사는 아니겠으나「괴테」의 천재 중에서 장수를 빼놓을 수 없다고「발레리 가 말한 것처럼 작가는 모름지기 오래 살면서 글을 쓸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문학이외의 일로 창졸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로서는 유감스럽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보도가 전해주는 자결의 동기와 전후 상황에서 얼핏 오늘의 일본인의 정신의 한단면을 엿볼 수 있어 소름이 끼친다. 그것은 국수적 천황제의 부활에 따르는 군국주의적 사상이 대두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도씨는 일본의 최고의 지식층에 속하고있다. 그런 씨가 국수적인 사설군대(?)를 조직했고, 그 대원을 이끌고 자위대 영내에 난입, 자위대의 재무장을 실현할 수 있는 헌법개정을 위한「쿠데타」를 총감과 자위대원들에게 강요, 호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할복한 모양이다.
뜻이 이루어졌다면 일본에는 자위대에 의한 군부「쿠데타」가 일어 났을지도 모르고 사태는 급변했을 것이다. 그런데 할복자살도 일본의 전통적인 무사의 그것대로 했다. 일본무사도의「할복」은 그것대로의 정신이 있어 구미의 혹평자들처럼 말하는 경솔은 피한다. 그러나 자신의 배를 째고 내장을 들어내고 숨지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끔찍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일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어, 역사의 앞장을 서야할 40대의 일본의 대표작가의 한 사람이 하고있다.
전후의 일본은 여러모로 국제적인 대열에 끼어 경제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크게 발전한 것으로 자처하고 있는지 모르나 이번 사건은 역시 도서국의 좁은 테두리를 탈피하기는 힘 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편에는 극좌극렬 분자들의 파괴와 그들이 빚어내는 혼란, 다른 편으로는 이번 사건같은 극우국수군국주의의 위협, 이것이 현 일본의 면모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은 삼도씨의 자결을 객관적 즉 사회와 국가적인 관점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입장으로 살핀다면, 이번의 삼오씨의 행동을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관련해서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금각사』를 비롯한 작품이 보여주는 삼도유기부의 문학세계는 미의 추구이며, 추구하는 미를 위해서는 죽음도, 어떠한 파괴도 불사하는 극한을 치닫고 있다고 보여진다.
최근 5,6년 동안은 일본적인 것의 미에 지나치게 집착, 무사도를 예예하는 작품을 계속 써온 것으로 알고있다. 『풍요의 바다』라는 대작은 3부까지 발표되어 일본문단에 크게 반향을 일으킨 모양인데 제3부인『분마』에는 자결하는 좌익청년을 그리그 있으며『파국』이라는 단편은 2·26 군부「쿠데타」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영화화까지 했는데 자신이 연출·출연해 할복하는 장면을 연기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의 자결은 작품세계를 실지로 행동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작가란 자신의 작품세계를 객관적으로 꽉 붙잡고 움직일 수 있는 냉정성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신의 세계에 대한 광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광신이 이번의 비극같은 것을 초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삼도씨는 유도·검도 등으로 다지고 다진 건강한 체질이었다고 역시 외신은 전해준다. 그러나 정신면에 있어서는 육체와 달라 허약한데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필 끔찍스럽고 시대착오인 군국주의의 부활을 바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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